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2


요한공부 성경공부 12 (9:1-41)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며 (8) - 육체의 눈, 영혼의 눈

한 눈먼 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1)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군가의 로 인하여 발생한 육체의 질병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9:2)"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오? (9:19)"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다 (9:16)"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 맹인이 정말 보지 못하는 자였는지에 대해 논쟁했고,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궁금해 했고 치유받은 날이 안식일이었음을 트집 잡았다.

눈을 뜨고 있지만 편견은 그들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끌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정말로 눈 뜬 장님들이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 바로 이 눈먼 자를 통해 일하신다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주목해 보아라 (9:3-5)"

전도서 7:13 -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라

출애굽기 14: 13 -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예수님에 의해 육체의 눈을 뜨게 된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했다. 하나님은 소경이었던 사람의 입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게 하셨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실제로 안식일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치유의 경험을 통한 단순한 고백은 너무나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I see의 두 가지 의미; 1) 시각적 이미지를 인식한다, 2) 보여지는 것의 의미를 이해한다.

눈을 통해 보여지는 사물과 상황들 속에 우리가 인지해야 하는 것들이 숨겨져 있다. 나의 하루 하루의 삶속에서 눈으로 보여지는 상황들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다. 나의 삶을 뒤돌아 보면 그 삶의 순간순간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손길이 있다.

 

예수님을 보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해야 한다. 

3차원적 존재인 인간은 죽음이라는 시간적 한계와 지구라는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만 살아가기에 인간은 제한된 물질을 두고 욕심과 경쟁으로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

만약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이 주어지고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3.5차원, 4차원), 인간은 새로운 가치관과 목표를 갖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훨씬 가치있게 변하게 되고, 인간의 사고도 더 넓게 확장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 변화된 차원의 세계를 우리에게 제시했으며, 실제로 예수님은 온 몸으로 그 변화된 가치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그 예수님의 삶을 우리도 따르기로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그 새로운 차원의 삶을 볼 수 있는 눈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갖게 되며, 그때 우리는 진짜 눈 뜬자가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GOD)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기도할 때 찾는 종교적인 신이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신비로운 신이다. 나는 그 신비로운 신의 존재를 믿는다"  - 아인슈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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