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6월 22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6

 

요한복음 성경공부 06 (5:1-30) –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

 

편견 (prejudice), 또는 고정관념 (stereotype)은 나에게 주어진 축복의 환경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계가 인간의 욕심, 이기심, 경쟁심, 의로움으로 왜곡되어 졌고,인간들은 그 축복을 혼자 차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이 죄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결과를 항상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에덴동산 - 욕심 당신이 나에게 주신 여인이 나를 유혹했다 (3:12)

최초의 가정 (아담,하와, 카인, 아벨) - 경쟁심 -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인가 (4:9)

광야, 시내산 - 불안, 의심 - 광야에서 우리가 죽게 생겼다 (14:11)

가나안, 이스라엘 - 자만 당신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보여라 (말라기1:2)

 

사람들의 편견 (요한복음 5)

 

베데스다 못 주변에 모인 사람들;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이면 무조건 먼저 들어가서 병의 나음을 얻기 위해 (5:4, 이 구절은 고대 사본에는 없는 구절임) 서로 경쟁적으로 살아간다.

 

38년 된 병자; 나를 들어서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으로 들어간다 (5:7)  

 

유대사람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5:10)

 

예수님은 이 편견을 깨뜨리신다. 낫고 싶으냐 (5:6),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 (5:7),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5:17)

질문) 베데스다 못이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죄사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 특별함에 집착한다 (영지주의적 구원론). 그 특별함을 누리기 위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강해지고 완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은 특별한 은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주어졌다고 오해하게 된다 자신이 받은 특별한 치유의 결과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고 자기 의와 성취감, 오만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절대로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그 모습 그대로 만나 주셨으며, 그의 의지를 물어 보았다. 병고침과 죄사함의 능력은 오직 예수에게만 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 (5:24)”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셔서, 그 안에 생명이 있게 하여 주셨다.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5:26-27)”

 

우리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용기 (폴 틸리히)

1. 두려움을 떨쳐내는 용기 - 나의 약함,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감

2. 할 수 있다는 용기 - 하나님이 나의 힘되심을 인정함  

3. 거절당할 용기 -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 

2023년 6월 5일 월요일

배척당하신 예수님 (John 7:1-52)

  편견은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메시아에 대한 왜곡된 소망을 갖고 있었던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바로 눈 앞에 그리스도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 보지 못했다. 진리의 길을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바로 이 편견 때문에 메시야를 알아 보지 못했다.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다.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선한 의도는 잘못 받아들여지고, 참되게 살아 가면 이용 당한다. 세상의 문화에 어울리지 못하며, 경쟁에서 뒤쳐진다. 왜냐하면 세상은 참되지 못하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채우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이러한 모습을 악하다고 증언하셨기에,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했다 (7:7).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율법의 정신을 진심으로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7:19).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는 저주받은 자들이다 (7:49) 라고 할 정도로 율법을 신봉했지만, 정작 그들이야말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에 따라 율법을 적용했다. 그들은 율법에 맞게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니고데모의 의견조차 묵살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분임을 알아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자기 마음대로 말하며 자기의 영광만을 구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진실하며 불의가 없으시다. 세상은 진실하며 불의가 없으신 예수님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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