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John 15:1-27)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이시며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다. 포도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풍성한 생명과 풍요로운 축복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머물러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세상의 풍파속에서 그 믿음을 지키면서 버터야 (abide by)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친구되시는 보혜사 성령님 (parakletos)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보내셔서 그 믿음을 확증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미워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리에 근거한 도그마적인 해법만을 우리에게 준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다양화되어 있고 각자가 처한 문제점들은 획일화된 가르침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선택해서 세상에 두어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계획하셨다. 세상의 기준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썩어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 기준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거룩함이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열매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그 풍성한 생명이 그대로 나에게 연결된다. 열매 맺음의 첫번째 단계는 생명의 연결이다. 그 다음은 성숙이며 꽃 피움이고 최종적으로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참 의미이다.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John 14:1-31)

    근심과 두려움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창조의 본질과 욕심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1) 인간의 삶은 고난과 더불어 살도록 설계되었다. 즉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일해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자녀를 낳고 기르는 고통을 겪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께 그 수고와 고통을 피하게 해달라고만 기도한다.

 

2)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이 되시는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평범하며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낮아짐과 순종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절대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오직 특별함만을 추구한다.

 

3) 피조물로서의 한계성을 가진 인간은 결국에는 죽을 운명이며 그 죽음의 비존재성에 굴복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영원히 살것처럼 성공과 부를 끝없이 추구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살고자 했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곧 떠나게 됨을 알려주셨다.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은 근심하고 두려워했다. 다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제자들은 -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 이후 대부분의 제자들은 옛 삶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 그 떠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근심과 두려움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근심과 두려움의 진짜 원인은 우리의 욕심과 육체의 죽음이다.

 

     고통과 혼돈의 삶을 근심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며, 거기서 벗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붙들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들은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진짜 생명을 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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