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경공부 04 (3:1-16) - 니고데모와의 대화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롬 3:23). 인간은 스스로 절대적 선악을 구분할 수 없기에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과 반대개념으로 육적인 것을 판단하며, 육에 속한 인간은 연약하며 저급하며 악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연약함과 죄성을 극복하는 상반된 방법을 니고데모 (유대교, 영지주의적 사고)와 예수님 (절대진리, 하나님의 나라)의 대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상적 배경
영지주의; 인간의 영혼은 물질인 육체에 갇혀 있고,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비밀스러운 참 지식의 깨달음과 수양이 필요하다. 악한 세상에서의 육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참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생활을 통해 종말 이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절대적 (absolute), 불변적 (immutable) 존재 (existence)인 '신'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과 스토아 학파, 프로메테우스)
불교의 윤회사상;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 (生老病死), 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으로 정의된다. 모든 인간 (중생)은 수레바퀴 같은 삶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윤회). 자비를 행하고 도를 닦으며 깨달음을 얻은 인간만이 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해탈), 지극히 선한 신의 경지 (열반)에 도달한다.
니고데모가 바라본 예수님 - 랍비, 선생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표적을 행하는 분 (요3:2), 구원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니고데모의 반응
예수님; 다시 나지 않으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3:3)
니고데모;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 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다 (요3:4)
예수님; 물과 성령(프뉴마, 바람, 생기)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3:5)
니고데모;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요3:9)
니고데모는 약한 육적인 존재인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영적인 수련과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여 육체의 죽음 이후에 고귀한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 역시 같은 생각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마19, 막10, 눅18).
거듭남에 대한 바울의 설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요3:6);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영생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17:3)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2)
- 우리들은 과학과 이성의 눈으로 성경과 복음을 바라본다. 인간의 제한된 논리적 판단과 이성적 사고로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이해시켜 주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전달 해 주는 편지이다. 사랑을 담은 편지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성경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있고, 우리는 그것을 복음 또는 진리라고 부른다.
영지주의자들은 현재의 육적인 삶을 부정하며 (현실 도피적 삶)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의 방법을 만들어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갔다 (엣세네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현재 나의 삶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종말 역시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매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영지주의 자들이 부정하는 그 세상을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바로 위로부터의 구원이다 (요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