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7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4

요한복음 성경공부 04 (3:1-16) - 니고데모와의 대화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 3:23). 인간은 스스로 절대적 선악을 구분할 없기에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과 반대개념으로 육적인 것을 판단하며, 육에 속한 인간은 연약하며 저급하며 악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연약함과 죄성을 극복하는 상반된 방법을 니고데모 (유대교, 영지주의적 사고) 예수님 (절대진리, 하나님의 나라) 대화를 통해 있다.

 

사상적 배경

영지주의; 인간의 영혼은 물질인 육체에 갇혀 있고,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비밀스러운 참 지식의 깨달음과 수양이 필요하다. 악한 세상에서의 육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참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생활을 통해 종말 이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절대적 (absolute), 불변적 (immutable) 존재 (existence) ''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과 스토아 학파, 프로메테우스)

불교의 윤회사상;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 (生老病死), 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으로 정의된다. 모든 인간 (중생)은 수레바퀴 같은 삶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윤회). 자비를 행하고 도를 닦으며 깨달음을 얻은 인간만이 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해탈), 지극히 선한 신의 경지 (열반)에 도달한다.

 

니고데모가 바라본 예수님 - 랍비, 선생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표적을 행하는 분 (3:2), 구원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니고데모의 반응

예수님; 다시 나지 않으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3:3)

니고데모;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 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다 (3:4) 

예수님; 물과 성령(프뉴마, 바람, 생기)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3:5)

니고데모;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3:9)

 

니고데모는 약한 육적인 존재인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영적인 수련과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여 육체의 죽음 이후에 고귀한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 역시 같은 생각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19, 10, 18).

 

거듭남에 대한 바울의 설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2:20)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3:6);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영생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 (17:3)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 3:12)

- 우리들은 과학과 이성의 눈으로 성경과 복음을 바라본. 인간의 제한된 논리적 판단과 이성적 사고로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이해시켜 주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전달 주는 편지이다. 사랑을 담은 편지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성경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있고, 우리는 그것을 복음 또는 진리라고 부른다.  

 

영지주의자들은 현재의 육적인 삶을 부정하며 (현실 도피적 )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의 방법을 만들어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갔다 (엣세네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현재 나의 삶속에  진행되고 있으며 종말 역시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영지주의 자들이 부정하는 세상을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바로 위로부터의 구원이다 ( 3:16).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John 6:1-15)

   유대인들에게루는 날이 저물면서 시작된다. 그들의 하루는 저녁부터 다음 저녁까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까지 나아 무리들에게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 (날이 저무는 ) 예수님은 육의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죽은 진리의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려 주셨고, 허기진 무리들을 육의 양식으로 풍족하게 먹여 주셨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치유의 기적을 보고 광야까지 따라 무리들은 영과 육의 양식 모두 채워 주신 예수님을 세례 요한같이 세상에 보내진 선지자로 여기고, 왕으로 삼으려 했다. 광야에 모인 2만명 정도의 인원이 왕으로 세운다고 해서 곧바로 유대의 왕이 없다.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목격한 제자들이 그곳에 집을 짓고 머물기를 원했듯,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예수님의 능력에 흥분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 옆에 계속 머물러 계시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류를 위해 땅에 오셨다. 어느 무리만을 위해 한 장소에 머물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영지주의적 사고 우리들의 세계관을 '' '우리' 중심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무리들은 그들이 본것을  이웃과 이방나라에 전파해 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by force) 잡아 왕으로 삼고 그들만의 왕국 만들고자 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홀로 산으로 물러가셨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우리들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으로 부터 얻어내는 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을 통한 온 인류 구원, 이웃 사랑은 나의 우선 순위에서 항상 제외시켜 버린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서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님 (John 5:19-47)

    세상은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고, 눈으로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에게 온전히 알게 해 주셨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며, 선과 악을 심판하시는 권한을 가지셨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다 ( 5:24).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묵상과 기도로 영성훈련을 통해 성경 안에 감추인 엄청난 보화들을 발견해 왔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암기하며 필사까지 하면서 그 말씀이 품고 있는 귀중한 하나님의 진리에 가까이 가고자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고,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음을 트집잡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 말씀을 암기하며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지만, 그 말씀이 증언하고 있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하고 계신 모든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내심의 증거임을 알지 못했고, 성경의 모든 증언들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경의 모든 증언들은 예수님을 증거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찾으면서 정작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 (예수 그리스도)은 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존경하고 숭배하는 모세의 글 (성경)을 믿지 않게되는 모순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 모순된 신앙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구원자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기에 사람들에게 영광받으실 필요가 없다. 죽음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바로 지금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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