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1일 월요일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 (John 8:1-11)

      이 사건은 요한이 쓴 복음서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후대에 초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배교자들에 대한 용서의 필요성이 있게 된 후 추가된 내용이다. 이른 아침에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오게 되었다. 남자 없이 연약한 여자만 잡혀 왔으며 이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무리들에 의해 미리 계획된 범죄였다. 가련한 여인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들은 세상의 악함에 이용 당하며,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죄를 짓는 약한 존재이다. 여인을 잡아 온 무리들은 이미 십계명을 어겼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아라). 그들은 세상의 악에 대해 그것을 악이라고 말하는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며 스스로 의롭게 보이고 싶어했다

 

    악인들은 그들을 악하다고 말하는 자를 미워한다.

 

     모두가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모든 인류에게 선포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 (condemn)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 짓지 말아라" 실패하고 유혹에 넘어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고 극복하지 못하며,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죄이다. 예수님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우리 모두를 용서하셨다.  

     죄사함 (delete)은 죄인이 죄에 대한 법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판결의 주체는 제 삼자, 즉 판사나 제사장의 몫이지만, 판사나 제사장은 죄로 인한 피해자가 아니므로 그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 죄의 용서 (forgive)는 도덕적, 사회적, 관계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기에,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반면 피해자에게 법적인 죄 사함의 권한은 없다. 진정한 죄 사함과 용서의 권한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초월적 신성), 동시에 우리의 모든 죄와 고통을 체휼하시는 사람의 아들 (인성)이시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7

 

요한복음 성경공부 07 (6:1-15) - 가장 귀한 가치

 

A. 광야생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모세가 기록한 것이 나를 두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모세의 글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나의 말을 믿겠느냐?" (요한복음 5:46-47)

구약시대

신약시대

만나, 메추라기 (제한적)

오병이어 (풍성함)

모세를 통한 간접적 공급

예수를 통한 직접적 공급

율법 

영생

가나안

하나님의 나라

금송아지를 숭배한 백성들

예수를 억지로 왕 삼으려는 무리들

 

//;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들에게 의식주의 문제가 발생했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 (3:17)"

 

정당한 노동과 그 댓가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의 삶이다. 의식주의 문제는 여전히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며, 농업기술을 통한 식량증산은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의식주를 추구한다 (욕심, 불안, 남과의 비교) - 자기 과시, 자기 , 자기 실현의 결과물로 왜곡; 세속적 문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함 

 

예수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들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훨신 낫다 (6:28-30).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짜 가치; 하나님의 나라, 영생

 

광야에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의식주를 해결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진짜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를 원한다.

질문) 나는 예수를 믿는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있기 때문에?

 

B. 시험당하신 예수님

당시 스토아 철학의 영향 - 자신의 운명 (죽음, 가난, 고통 )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긍정적; 삶의 만족, 스스로의 삶을 묵상, 겸손 -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부정적; 불만, 분노, 삶의 본능적 욕구에 집중, 이기적, 수동적 삶의 자세

영지주의는 이러한 운명론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의 참지식과 수련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적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수의 사람들을 왕이 아니다.

 

예수님의 소명적 ; 인류의 구원, 사랑, 새창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서는 초월적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금식 후에 떡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 누워 곳이 없었다. 먼길을 걸어서 다니셨다. 자신에게 향한 조롱을 묵묵히 견디셨다. 생명의 위협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사명의 완수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위해서만 능력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내 삶에 주어진 것들에 대한 익숙함과 당연함은 그 본래의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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