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9월 28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9

 요한복음 성경공부 09 (7:1-52) -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기독론)

 

아담과 하와의 범죄는 인간이 본질로부터 벗어남을 보여주는 상징적 사건이다. 죄는 하나님과 소외 (estrangement)된 상태로 살아가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이다. 그러나, 인간은 하나님과 연관성을 갖도록 창조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형상), 본질적으로는 소외되지 않았다. 예수님은 이 복된 소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셨으며, 하나님께 갈 수 있는 믿음의 길 (용기, encourage)이 되어 주셨다.

 

목자는 자기 양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른다.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은 양들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다 (10). 예수님은 나의 존재의 가치를 아름답게 여기신다. '아름답다'에서 '아름' ''를 뜻한다. '본래의 나'의 모습, 또는 ''라는 존재의 본질적 가치있는 모습이 아름답다.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바라 보시고 좋았다고 말씀하셨다. 모든 것의 본질적 모습은 모두 아름답다. 예수님이 나의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할때 예수님은 내가 잃어버리고, 잊고 있었던 아름다운 나의 존재적 본질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 주신다.

 

예수님이 자기 스스로를 언급한 요한복음의 독특한 표현

나는 생명의 떡이다 (6:48)

나는 세상의 빛이다 (8:12)

나는 양의 문이다 (10:9)

나는 선한 목자이다 (10:11)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11:3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14:6)

나는 참 포도나무다 (15:1)

 

소외된 인간의 근원적인 악; 불신앙 (하나님의 존재 부정), 오만 (자기중심적), 욕망 (불안함)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한다 (7:7)

세상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한다 (7:19)

세상은 예수님에게 분개한다 (7:23)

 

예수를 향한 어리석은 표현들 (죄악된 시각으로 예수님을 바라봄)

세상에 자기를 드러내십시오 (7:4)

이 사람은 공부한 적이 없는데, 어떻게 이런 학식을 가졌는가 (7:15)

당신은 귀신이 들렸소 (7:20)

갈릴리에서 그리스도가 나올 수 있을까 (7:41)

 

예수님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두고 유대인들 사이에서 분열이 생겼다. 이 질문은 궁극적으로 예수님이 하나님인지 (삼위일체)에 대한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소모적인 논쟁이다. 왜냐하면 수많은 예언자들을 통해 이미 계시되었고,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그리스도를 진심으로 기다리는 사람들은 참 그리스도를 알아본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자신의 속성을 사람들에게 나타내셨고, 사람들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에게 나아감을 얻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예수님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그 가르침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인지 안다 (7:17)"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다 (7:28)"

"나를 믿는 사람은 그 배에서 생수가 강처럼 흘러나올 것이다 (7:38)"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이사야 55)" -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를 통해 성취됨

"내가 네 몸에서 나올 자식을 후계자로 세워서,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삼하 7:12)"

"너 베들레헴아 ---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나올 것이다 (미가 5:2)"

2023년 9월 15일 금요일

영혼의 눈을 뜨게 해주시는 예수님 (John 9:1-41)

      육신의 눈은 물리적 세상을 보게 해주고 시각적 정보를 제공해준다. 영혼의 눈은 진리를 알게 해주며 우리를 구원의 길로 인도한다. 잠시동안 이 세상에 살면서 두 눈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보고 있을까?

     예수님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셨다.

사람들은 그가 앞을 보지 못하는 것을 두고 누구의 죄인지를 따졌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하시려는 것을 그 소경을 통해 하심을 말해주셨다. 소경이 눈을 뜨자 사람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에 일하신 것을 문제 삼았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고자 하셨다. 사람들은 예수님이 어떻게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었는지 방법에 관심을 가졌다. 예수님은 한 사람의 영혼이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영혼이 구원받는 것을 원하신다.

 

     예수님이 소경의 눈을 뜨게 해주신 사건을 영혼의 눈으로 보았다면, 사람들은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아야 했다. 한 영혼이 눈을 뜨게 된것을 기뻐하며 그를 격려하고 함께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했다. 그러나 아무도 그렇게 하지 않았다. 눈을 뜨고 있지만 진짜 보아야 할 것들을 보지 못한 그들은 사실상 눈뜬 장님들이었다.

     율법과 제사 그리고 잘못된 종교적 열심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게 만든다. 율법에 얽매인 믿음은 우리들을 강팍하게 만든다. 왜곡된 사랑과 무조건적 순종은 타인에 대한 잔인함으로 표출된다. 하나님을 제대로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하나님 나라의 진리는 영혼의 눈을 뜨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주어진다.

2023년 9월 5일 화요일

우리를 자유롭게 하시는 예수님 (John 8:12-59)

      유대인들은 예수님께 '당신은 누구요?" 또는 "당신은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하시오?"라고 물었다. 이미 수없이 많은 기적을 보이셨고, 권위있는 말씀으로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보여주셨지만 사람들은 계속해서 더 구체적인 증거를 요구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고 성전에서 제사 지내면서도 정작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에 대해서는 무지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존재는 로마의 지배에서 벗어나 유대인의 강력한 나라를 재건 해 주는 신이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알지 못했다.

 

    민족적 우월성과 물질적인 세계관에서 벗어나지 못한 그들을 예수님은 죄의 종이라고 표현하셨다. 그리고 그 죄의 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진리를 알아야 하며, 진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주어진다. 그러므로 당신은 누구요?라는 질문은 바로 나에게 해야 한다. 유대인들은 땅의 것만을 인식하며 물리적으로 가능한 현상의 눈으로 예수님 바라보았다. 그러나 위에서 오신 예수님은 초월적인 영역에서 바라보아야 했다. 죄악되고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사람들은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다.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하나님을 우리가 제대로 알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종의 상태에 놓여 있었다. 물질세계의 한계는 우리의 사고의 영역을 매우 좁게 만들었으며, 그 좁은 사고의 영역속에서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더욱 꼼짝없이 움직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로고스이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진리의 길을 열어주셨다. 진리는 우리들을 그 처참한 상태에서 벗어나 온전한 자유인으로 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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