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성경공부 10 (8:1-11) - 용서하시는 예수님
로마에 의하여 기독교가 공인된 후 박해가 끝나자 가장 먼저 주목받은 것은 배교자 (유대교로 돌아간 자들, 기독교 신앙을 버린 자들)에 대한 '용서' 였다.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는 내용 (8장)과 예수를 세번 부인했던 베드로를 용서하는 내용 (21장)은 원래 요한복음에는 포함되지 않았지만 후대에 필요에 의해 추가되었다. (마가복음 16:9-20 역시 후대에 추가된 내용)
첫번째 상황.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한 유대인들의 음모
1) 이른 아침, 2) 여인 홀로 잡혀 온 상황, 3) 많은 무리들에 의해 현장이 목격된 상황 (율법학자들과 바리새파 사람들), 4) 여인을 굳이 예수님께 데리고 올 필요가 없었다.
무리들은 의로움에 가득 차서 율법을 어긴 여인을 예수님께로 끌고 왔다. 타인의 죄를 정죄하면서 스스로를 의롭다 여기는 가증스러운 모습은 우리에게도 여전히 있다.
두번째 상황. 무리들을 물러가게 하신 예수님
"너희 가운데 죄가 없는 자가 먼저 돌을 던져라"
예수님은 무리들의 마음 속 깊숙히 살아있는 관대함과 자비라는 '하나님의 형상'을 자극했다.
여인의 죄만 비난했던 무리들은 자신들의 죄의 실체를 보게 되었다.
내가 죄인임을 인식하게 되면 나는 그 어느 누구도 비난 할 수 없게 된다.
율법을 완전히 지키고 있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새인들도 스스로 죄 (드러나지 않는)가 있음을 인식한다. (율법으로는 절대로 의로울 수 없다)
세번째 상황. 여인과 마주하신 예수님
"너를 고소하던 무리들은 어디로 갔느냐"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짓지 말아라"
여인은 무리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이용당했다. 그리고 무리들이 모두 물러간 후 홀로 남았다. 그리고 그 홀로 남겨진 자리에 예수님이 계신다. 세상은 나를 철저히 이용하여 죄의 상황으로 몰아간다. 나는 수치심과 죄의식에 빠진 채 홀로 그 세상 한복판에 서 있다. 그 순간 바로 그 자리에 예수님이 내 앞에 계신다.
예수님 앞에 서 있는 여인의 모습 - 나의 모습 (수치심, 포기, 분노, 죄의식), 가면(persona)을 벗은 온전한 나의 얼굴.
페르소나; 인간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사회가 요구하는 페르소나에 의존하여 살아간다. 즉 자신의 본 모습을 숨기고 포장된 모습으로 살아가는데 그 간격이 커지게 되면 신체적, 정신적 문제가 발생한다. (칼 융)
네번째 상황. Then what? 한편의 단편소설; 결말을 내지 않고 생각의 여운을 남긴다.
예수님은 나에게 물어보신다. 너는 어떻게 살겠느냐? 너는 무엇을 믿느냐? 너는 나를 만나고 있느냐?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다. 율법은 우리를 자유케하지 못한다. 메마르고 완고한 믿음
기독교는 신념이 아니다. 비이성적 신념은 폭력적이다. 이기적 소망
기독교는 도덕이 아니다. 선한 삶이 영생을 주지 못한다. 일방적 사랑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만남이다. (본 회퍼)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알고 또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 (요 1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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