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알지 못하면 보아도 그것이 무엇인지 인식할 수 없다. 평생을 눈먼 자로 살던 사람이 갑자기 눈을 뜨게 되면 사과를 보아도 사과인 줄 모른다. 정상인들도 사과와 똑같이 생긴 모형사과를 구분할 때는 향기 (후각)나 만져봄 (촉각)을 이용하며, 그 감각은 선험적 (a priori) 으로 이미 습득했던 것들이다. 즉, 사과라는 존재를 받아들이기 위한 모든 감각들 (시각, 후각, 촉각, 미각)이 이미 나의 인식속에 경험 되었기에 사과를 사과로 인정하게 된다. 또한 색깔에 대해 알지 못하면 우리는 물체의 색을 구별하거나 인식할 수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존재하시는가 질문 이전에 하나님은 누구인가를 먼저 알아야 한다. 하나님에 대해 알지 못하면 그분의 존재를 인식할 수 없다. 물론 피조물인 인간이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완벽하게 알 수 없지만, 우리는 그 절대자를 알고 인식하게 될 때 (감각과 오감으로), 비로소 그 존재를 인정할 수 있다. 즉 그 존재를 보고 믿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요 20:29) 고 가르치셨으며, 바울 사도 역시 로마서 8장 24절에 "눈에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바라겠습니까?" 라고 기록했다.
이러한 인식의 우선성은 현대 물리학의 양자역학에도 적용되는데, 빛을 파동으로 인식하면 파동으로 존재하며, 빛을 입자로 인식하면 입자로 존재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름이 무엇인지 질문했으며, 하나님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라고 답했다. 이 대답의 의미는 하나님은 존재 (완전성)이시며, 인간은 존재가 아닌 불완전성을 가진 피조물, 즉 존재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전체를 포함하며, 규정할 수 없는 바다와 같으며, 무한하시고, 불가시적이기에 인간의 제한된 이성으로는 도저히 완전하게 파악할 수 없다. 피조물은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가지기 때문이다. 그리스 철학의 영향을 받은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만물 (존재자)이 주 (존재)로부터 나오고 주 (존재)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언젠가 우리 눈에서 수건이 벗어지고 얼굴과 얼굴을 마주 대하는 날을 소망하며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알아가야 한다 (고전 13:12-13). 하나님의 존재는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만큼 우리에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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