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15일 화요일

위험을 감수하는 삶 (Luke 19)


    사람들은 누구나 안정되고 편안한 일상을 원하며, 그러한 삶을 위해서 어느 정도 물질이 필요하기에, 노동을 통해 삶의 자원을 얻는다. 문제는 인간의 끝없는 욕심으로 인해 일어나는 갈등이다.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한정된 물질을 남보다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하는 사람들로 인해 이 세상은 치열한 경쟁사회로 변해 버렸다. 삭개오는 그 경쟁을 통해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걷어 자신의 부를 축적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세상은 치열한 경쟁사회이다.

 

     그러나 세상에는 눈에 보이는 물질적 가치뿐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무형의 가치가 분명히 존재한다. 정말 귀한 것 - 사랑, 희생, 인내, 자비 등 -은 눈에 보이지 않으며, 그 보이지 않는 귀한 가치의 정점에 영생이 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권력을 잡은 자나 일반 민중들이나 모두 막연하게나마 영생을 갈망한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기에 마음 깊숙한 곳에 절대적 존재에게 회귀하려는 본질적 소망을 갖고 있으며, 소망의 궁극적 목적지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이다. 예수님은 그 하늘 나라의 실체를 우리에게 알려주셨고,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영생을 허락하셨다

 

     영생은 가장 귀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 영생의 선물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께 빚진 자이며, 빚진 자에게는 의무와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믿음의 삶을 사는 것이다. 그런데 그 믿음의 삶은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안정되고 편안한 삶이 아니다. 오히려 그 삶 속에는 고난과 실패가 있으며, 인내와 무한한 희생이 요구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모든 위험과 어려움을 감수하면서도 살아갈 가치가 있는 나라이며, 하나님은 우리가 그 믿음의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  

 

     믿음의 삶은 위험을 감수하며 살아가야 한다.

 

     삭개오의 삶은 안전함을 최대한 추구하는 세속적인 삶에서 위험을 감수하는 영생의 삶으로 변화했다. 한 므나의 은화를 받은 종은 그 위험을 감수하며 이득을 남겼지만, 그러지 못한 종은 있는 것조차 빼았겼다. 위험을 감수하며 믿음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은혜로 주어진 영생의 삶은 우리에게서 멀어질 수 있음을 예수님은 경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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