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2월 27일 월요일

일하시는 예수님 (John 5:1-18)

       예루살렘으로 들어가는 성문 근처에 있는 베데스다 못 주변에는 육체의 질병으로 인해 성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모여 살아가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천사가 가끔씩 와서 못의 물을 휘저을 때, 움직이는 물속에 맨 처음 몸을 담그면 병이 낫는다는 소식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다. 실제로 치유의 기적이 일어났는지 성경은 증거 해 주고 있지 않지만, 안타까운 사연을 가진 수많은 병자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그곳에 모여 있었다.  

     하나님에 의한 치유의 은혜가 있어야 하는 베데스다 연못은 실제로는 병이 낫기를 원하는 사람들간의 이기적인 경쟁만이 있던 곳이었다. 그나마 조금 더 가벼운 병을 가진 사람이 훨씬 유리한 조건이었고, 진짜 치유가 필요한 중한 병을 가진 병자들은 연못 주변에서 하염없이 기다려야만 했다. 유대 지도자들은 율법에 의하여 육체의 질병을 죄의 결과로 정죄했기 때문에, 베데스다 연못에 있던 사람들은 아무런 소망도 없이 가장 비참한 밑바닥의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베데스다는 현대 교회가 갖고 있는 모든 문제점을 보여주는 곳이다. 분명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주어졌지만, 사람들은 그 은혜를 자신만이 소유하고 싶은 복으로 잘못 해석했다.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과 타인을 향한 정죄함으로 인해 교회안에 사랑과 자비는 없어져 버렸고, 오직 축복만을 경쟁적으로 추구하는 기형적 종교의 모습만이 남아 있다. 습관적으로 드리는 정기적 예배, 기도회, 축복성회에 무조건적인 출석을 강요하는 목회자들에게 교인들은 수동적으로 순종한다. 날마다 새롭게 변화하고자 하는 의지는 없으며, 모든 것을 타인의 책임으로 돌리는 게으름은 이천년전 베데스다 못에 모여있는 병자들과 똑같은 모습이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바로 그 곳을 찾아 오셨고, 예수님의 방식으로 사람들을 치유해 주셨다. 자신의 육체적 질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지를 보인 38년된 병자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고침을 받았다. 예수님은 안식일이라는 거대한 장벽을 허물어 버리셨고,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2023년 2월 23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2

요한복음 성경공부 02 (2:1-12)

 

갈릴리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예수님의 첫번째 기적(세메이온;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

1. 혼인은 남자와 여자의 거룩한 만남이며, 하나님의 창조원리를 삶에서 실천 ( 1:28)

2. 혼인은 두 사람의 영적 성숙에 중대한 영향을 끼치는 과정

    -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신비한 일체 (영국 국교회 기도문)

3. 혼인은 친척과 친구들이 모여 즐겁게 기쁨에 동참하는 잔치 (7일동안 계속되는 축제)

 

예배하다 (헬라어로  prosquneo, pros-누구에게 + quneo-엎드리다, 절하다, 맞추다)

- 하나님을 만나서 엎드려 절하고, 입을 맞추면서 친밀한 애정을 나누는

- 사도 요한은 문제가 발생한 혼인잔치의 이야기로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유대교 예배의 한계와 한계를 극복하시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증명했다.

 

구성(plot) 전개방식

발단(exposition) - 전개(development) - 위기(crisis) - 절정(climax) -결말(conclusion)

 

혼인 잔치에 예상치 못한 상황들 (Encountering; to meet, come upon face-to-face unexpectedly, conflict with)

- 손님들에게 대접할 포도주가 이상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2:3, in vino veritas)

- 예수님과 어머니;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다 (2:4)

- 어머니와 일꾼들; 시키는 대로 하여라 (2:5)

- 예수님과 일꾼들; 항아리에 물을 채워라 (2:7), 가져다 주어라 (2:8)

- 잔치를 맡은 이와 일꾼들; 어디서 났는 알지 못했으나 일꾼들은 알았다 (2:9)

- 잔치를 맡은 이와 신랑; 좋은 포도주를 지금까지 남겨 두었다 (2:10)

- 예수님과 제자들; 그의 제자들은 그를 믿었다 (2:11)

 

구성(plot) 3 요소; 인물, 사건, 배경

주연(예수님), 조연(신랑, 신부, 잔치를 맡은 ), 엑스트라(일꾼들, 어머니, 제자들)

소품( 항아리, , 포도주), 배경(갈릴리 가나)

 

갈릴리 가나 - 심령이 가난한 자들이 모여 사는

혼인 잔치 (신랑,신부) - 하나님과 만나는 예배  

떨어진 포도주 - 생명력을 다하여 기쁨을 주지 못하는 유대교 제사

돌로 만든 항아리 - 유대교 율법

- 몸을 정결하게 하는 정결예식

일꾼들 - 예수께 순종,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알고 있는 증인들 

좋은 포도주 - 창조, 기쁨, 복음, 생명력, 영생이신 하나님

 

예수님의 표적 (세메이온,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는 상징) 물로 이전에 없던 좋은 포도주를 만든 사건은 창조를 가져오는 메시아적 잔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율법에 따른 정결예식을 위해 놓여 있던 항아리가 포도주를 담는 항아리로, 물이 좋은 포도주로  완전히 전환 (completely transform) 되었다. 이상의 깨끗함을 위한 예식은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구원의 역사가 이제 시작됨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건을 요한은 의도적으로 요한복음의 소재로 사용했다.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적이 없지만, 언약의 주인으로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서 창조의 위대한 사역을 시작했다. 계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며, 증거가 바로 성육신과 성령의 임재하심이다 (에밀 부르너).


2023년 2월 9일 목요일

예배의 주인이신 예수님 (John 4:1-42)

      강대국 앗수르에 의하여 멸망당한 후 이방인과의 혼혈로 인해 이스라엘인으로서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살아가는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대인들에게는 조롱과 경멸의 대상이었다. 그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조차 무시당하며 살던 한 여인이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그 여인에게는 남편이 다섯이나 있었고, 지금도 남편이 아닌 남자와 함께 살고 있었다. 어떤 이유로 인해 다섯 남편과 헤어졌는지 성경은 말해주고 있지 않지만, 그 여인은 심령이 가난한 자였고, 애통하는 마음과 심각한 삶의 목마름을 갖고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은 야곱의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났다.

     당시 여자는 남편에게 이혼을 요구할 수 없었기에, 남편과 사별을 했거나 이혼 당했을 것이고, 삶을 지탱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여러 남자와 살아야 했던 사마리아 여인은 삶의 가장 밑바닥인 상태에서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을 만났다. 예수님은 그녀의 근본적인 목마름을 해결해 주시고자 하셨다. 야곱의 우물은 유대인들이 드리던 반복적 제사를 상징한다. 그 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 (영원한 언약)를 약속하셨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신 메시야이다. 

      사람들은 확신없이 잘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면서 예배를 통해 육과 영의 만족을 찾고자 한다. 그러나 우리들은 영적 존재이신 하나님께, 성령의 도우심으로  진리이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예배해야 한다. 우리의 만족을 위한 예배가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자를 하나님은 찾으신다. 사마리아 여인은 힘든 절망적인 삶의 끝에서 소망이며 그리스도이신 메시아를 만났고, 기쁨에 넘쳐 예수의 소식을 온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전하는 증인이 되었다.

2023년 2월 5일 일요일

구원자이신 예수님 (John 3:1-21)

    니고데모는 바리새파 유대인으로서 율법을 지키고 말씀을 공부하며, 절기마다 제사를 지내는 철저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지만, 영원한 생명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했다. 유대 의회원이기도 한 그는 예수를 찾아와 그의 궁금한 것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예수님은 거듭나지 아니하면 (위로부터의 구원이 없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했지만 니고데모는 그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영적인 초월의 영역을 알려 주셨지만 니고데모의 지식은 육적인 것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이었다

 

     위로부터의 구원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한다.

 

     종교적 열심과 자기 의로 구원에 이를 수 있다는 잘못된 구원관은 우리가 여전히 육적인 지식에 머물러 있음을 말해준다. 육으로 난 것은 한계를 가진 인간의 영역이기에, 인간의 노력으로는 절대로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영은 초월적인 하나님의 영역이며, 구원은 오직 거듭남으로 (위로부터) 주어진다. 세례 요한은 물로 세례를 주었으나, 예수님은 성령으로 세례를 주신다 ( 1:33). 그러므로 위로부터 주어지는 구원은 예수님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어느 누구도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로 갈 수 없다 ( 14:6). 

 

     종교적 열심은 결코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영생은 오직 한 분이신 참 하나님을 알고 또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 17:3).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임을 알고 있었지만, 예수님이 말하는 거듭남의 비밀을 이해하지 못했다. 이미 육신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의 임마누엘의 역사를 말해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일을 말해도 소용이 없다. 믿지 못하는 자들은 어두움을 좋아하며 두려움에 빠져있지만, 진리를 따르는 사람들은 생명의 빛이신 예수께로 나아간다. 믿지 못하는 자들은 자신의 노력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의 자녀들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이 이루어짐을 알고 그것을 세상에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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