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 믿음생활의 본질이며 영생의 삶이다. 교과서를 외우듯 하나님에 대한 일반적인 설명을 그대로 받아들이거나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하나님을 똑같이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올바르지 않다. 왜냐하면 내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이 세상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독특한 관계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성령하나님은 오직 '나' 라는 존재의 깊숙한 곳까지 세세하게 알고 계시며, 하나님의 손으로 창조된 피조물인 인간의 깊숙한 곳은 모두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각자의 고백을 알고 싶어하셨다. 이 심각한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믿음의 여정이고 그 답을 얻기 위해서는 창의적 믿음의 자세가 필요하다.
나에게는 나 자신의 예수에 대한 고백이 필요하다.
이 창의적 믿음을 위한 첫번째 조건은
하나님의 역사에 대한 감탄이다. 태초부터 지금까지 쉬지않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우리는 삶 곳곳에서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그 섬세하고 광대하심에 매순간 매순간 감사와 찬양을 표현해야 한다. 그러나 나를 둘러싼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당연한 듯, 우연인 듯 여긴다면 그러한 감탄은 절대로 나오지 않는다.
두번째 조건은 믿음의 주이시며 나를 온전케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나의 시선을 집중시키는 것이다. 세상에서는 물론이고 교회내에서도 우리는 예수에게로 시선을 돌리지 못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삶의 모습과 구원의 길을 따르지 않는다. 예수님외의 다른 곳에도 구원이 있다고 말하는 거짓 논리에 마음을 빼앗기며 이웃을 사랑하라는 가르침에는 마음의 문을 닫아 버린다. 무엇보다도 현대 삶의 분주함과 매스미디어는 나의 시선을 온통 헛된 욕망에만 집중하게 만든다.
세번째 조건은 정해진 틀에서만 믿음생활을 하려고 하는 습성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이 갖고 있는 기복신앙적 자세에서 벗어나 복음의 본질로 나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건강, 승진, 자녀의 성공, 부의 축적 등 예수믿고 세상에서 성공한다는 근거없는 거짓 논리로 설교하는 수많은 목사들이 여전히 존재하며, 교회출석과 십일조, 교회행사 참여 등의 종교활동이 나를 구원으로 이끈다는 정해진 틀이 교회안에 엄연히 존재한다. 그 틀을 깨지 못하면 절대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기도가 모든 것보다 우선시 되어야 한다.
네번째 조건은 고난에 당당히 맞서는 것이다. 믿음의 유무에 상관없이 고난은 누구에게나 예고없이 지속적으로 다가온다. 더구나 교회내에 존재하는 기복신앙적 종교행사를 거부할 때 역시 갈등을 유발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은 희생과 섬김의 자세 뿐 아니라 불의에 대항하고 정직의 길을 걸어 가는 것이기에 그 과정에서도 수많은 고난이 발생한다. 세상과 교회 모든 곳에서 다가오는 어려움들을 우리는 피할 수 없다. 이 피할 수 없는 고난에 당당히 맞서지 않으면 창의적 믿음을 지킬 수 없다.
마지막 다섯번째 조건은 매일 매일 스스로 새로워지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서는 용기가 필요하다. 이전의 안락한 삶을 떠날 용기, 타인과 다른 삶을 살아갈 용기, 그리고 그로 인한 외로움과 고립을 견딜 용기가 그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안락했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한다. 광야의 자유로운 삶에도 불구하고 에굽의 노예상태로 돌아가고 싶어했던 히브리인들의 모습이 그 예이다. 그러나 갈 곳을 알지 못한채 본토 친척 아비의 땅을 떠난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비록 외로움 속에서 다른 삶을 살지만, 믿음과 용기는 우리를 창의적 믿음을 가진 참 신앙인으로 만들어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