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6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1

 요한복음 성경공부 01 (1:1-51)


요한복음이 쓰여질 당시의 시대적 사고방식

헬라적 사고 (그리스 문화); 플라톤 (이원론)과 아리스토텔레스 (논리학)의 사상이 지배적. 영적인 것 (신의 영역)과 육적인 것 (인간의 영역)의 분리.

로마적 사고 (Pax Romana); 황제의 절대권력 (황제는 신의 아들)과 철저한 계급사회.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세계를 문명인 (로마인)과 야만인으로 구분함

히브리적 사고 (유대 민족 종교); 신의 선택을 받은 민족적 우월의식. 철저한 율법준수.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분 (이방인은 구원받지 못함)

 

초기 기독교 (Jesus Movement)는 당시의 문화적 사고방식과 충돌했다.

하나님이 직접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셨다 (임마누엘) - 이원론과 충돌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평등하다 - 황제의 권위에 도전

하나님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구별없이 모두를 구원하신다 - 유대인 우월주의와 충돌

예수님이 진리와 생명되시며, 율법으로는 죄사함이 없다 - 유대 율법주의자들과 충돌

 

영지주의 (Gnosticism); 우리의 영혼은 물질인 육체에 갇혀 있고,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 참지식이 필요한데, 이것은 깨달음과 수련을 통해서 가능하다. 구원은 참지식의 소유 여부에 달려있고 이 지식은 특별한 사람들에 의해 비밀스럽게 전수된다. 영지주의는 우주론적 신화, 헬라와 동양의 철학사상, 기독교적 진리를 융합한 최초의 이단종파였으며 초대 교회를 가장 위협했던 사상적 운동이었다.

 

사도 요한은 당시의 문화적 사고와 충돌하면서 영지주의의 위협을 받는 초기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님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며, 인간을 구원할 유일한 구세주 되심을 강조하기 위해 요한복음을 작성했다.

 

1. 예수님의 성육신을 논리적으로 서술 (창세기에서 모티브를 가져옴)

태초에 말씀 (logos)이 있었다 - 그 말씀이 하나님 (God)과 함께 계셨다 - 그 말씀은 하나님이시다 - 그 말씀은 생명 (life)이다 - 생명은 사람들에게 빛 (light)을 주었다 - 그 말씀이 사람들에게 빛을 비춰주었다 - 어두움에 있던 사람들은 그 빛을 거부했다

 

2. 예수님의 신성을 강조함 (신이신 예수가 인간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심)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1:12)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1:14)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나, 독생자이신 하나님(예수)이 그 분 (하나님)을 나타내 보이셨다 (1:18)

 

3.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의 반응 (언약의 성취를 설명)

세례요한 -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 하나님의 아들

안드레 -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빌립 - 모세가 율법책에 기록하였고, 예언자들이 기록한 그 분 

나다나엘 -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4. 요한복음 전체를 암시하는 구절 (Programmatic Statement)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1:51)

야곱의 사다리 (Jacob's ladder); 베델 (Beth, ; El, 하나님 - 하나님의 집)에서 꿈을 꾼 야곱이 본 환상 - 하나님의 천사들이 사다리를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었다 (28:12)

2023년 1월 20일 금요일

성전이신 예수님 (John 2:13-22)

     종교는 절대적 존재인 신을 향한 믿음을 가진 교인들, 교리, 그리고 제사의식으로 이루어진다. 이 모든 요소들이 집중되는 곳이 바로 성전이다.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장소이며 죄가 사해지고 하나님과의 화목이 이루어지는 거룩한 공간이다. 광야생활의 장막 (tabernacle) 성전을 시작으로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 그리고 헤롯 성전에 이르기까지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 성전은 모든 삶의 중심이었다.

     하나님은 상한 심령을 원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성전이라는 제한된 공간에 머무르시지 않는다. 하나님은 제사를 즐겨하시지 않고, 번제를 기뻐하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이 구하시는 제사는 오직 상한 심령이다 (시편 51:16-17). 성전과 제사의 진정한 의미를 잊어버리고 오직 반복적인 종교행위에 몰두하게 되면서, 예루살렘 성전은 제사 편의주의로 변질되어 버렸다. 제물을 준비할 필요 없이 돈만 가져오면 성전 안에서 모든 것을 구입할 수 있게 되었고, 성전은 흠없는 소, , 비둘기를 파는 장사꾼들과 환전상들, 그리고 그들에게 장사를 할 수 있는 권리를 은밀하게 허가해 주는 제사장들로 더렵혀졌다. 모두가 스스로 성전에서 충실하게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고, 성전을 향한 잘못된 열심이 그들을 삼키고 있는 것을 알지 못했다

      예수님의 몸이 바로 성전이다.

     성전은 모든 사람들이 기도하는 곳이며, 기도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고요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거룩한 장소가 탐욕스러운 소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예수님께서 타락한 성전의 모습을 보고 분노하신 이유는 껍데기뿐인 종교행위 때문이었고,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제사의식에 하나님이 찾으시는 상한 심령은 없었다. 예수님은 한계에 다다른 성전을 무너뜨리고, 불완전한 율법을 완전케 하기 위해, 직접 성전이 되어 주셨고, 성령이 우리안에 거하심을 허락하셨다. 그로인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고 말씀을 듣는 기쁨을 예수님은 회복해 주셨다.  

2023년 1월 17일 화요일

새 잔치의 주인이신 예수님 (John 2:1-12)

 


       요한은 가나의 혼인잔치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기쁨과 축복의 자리인 혼인잔치에 포도주가 다 떨어졌다. 많은 손님들이 여전히 잔치의 자리에 남아 있었지만 그들에게 대접할 포도주는 없었다. 이 당황스러운 상황은 더 이상 아무런 기쁨도 생명력도 없어진 유대교의 율법을 상징한다. 에굽에서 기적적으로 탈출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처음 율법이 주어졌을 때 그것은 하나님과의 만남을 이어주는 기쁨과 사랑의 약속이었다.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이시고 불기둥과 구름기둥으로 이끄시는 광야의 기적을 경험했던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이 주인되시는 국가를 건설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율법은 형식만 남았고, 제사는 아무런 생명력도 보여 주지 못한 채, 특정세력들만의 특권으로 전락해 버렸다

     예수님의 첫 표적 (세메이온, 예수의 신성을 보여주는 상징)인 물로 이전에 없던 좋은 새 포도주를 만든 사건은 새 창조를 가져오는 메시아적 잔치의 시작을 의미한다. 율법에 따른 정결예식을 위해 놓여 있던 물 항아리가 새 포도주를 담는 항아리로 완전히 전환 (completely transform) 되었다. 더 이상의 깨끗함을 위한 예식은 필요가 없어지게 되었고, 예수님을 통한 완전한 구원의 역사가 이제 시작됨을 알려주는 중요한 사건을 요한은 의도적으로 요한복음의 첫 소재로 사용했다. 이전까지 어느 누구도 하나님을 본 적이 없지만, 새 언약의 주인으로 계시되었던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들 속으로 들어와서 새 창조의 위대한 사역을 시작했다. 계시는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만남이며, 그 증거가 바로 성육신과 성령의 임재하심이다 (에밀 부르너).

2023년 1월 14일 토요일

메시아이신 예수님 (John 1:19-51)

        사람들은 끊임없이 예수님에게 '너는 누구냐'라고 질문했다. 호렙산 에서 모세가 하나님에게 이름이 무엇인지 물어 보았던 그 의문을 우리들은 여전히 갖고 있다. 수많은 선지자들의 예언과 하나님의 약속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바로 눈 앞에 나타난 예수님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바로 우리들의 실존적 모습이다. 보이지 않는 신을 어떻게 믿을 수 있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눈 앞에 있는 하나님도 알아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이 우리에게 있다. 우리는 신화속의 강력한 힘과 능력을 지닌 신들을 상상한다. 중세의 그림이나 성당의 벽화속의 신들을 진짜 신이라고 믿는다. 그리고 인간의 언어로 무한한 존재이신 하나님을 묘사하며 원하는 것을 구한다.  

     인간은 강력한 슈퍼맨같은 신을 원한다.

     제사장과 레위지파의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너는 누구냐고 물어보았다. 누구인지 알고자 그 질문을 한 것이 아니다. 너같은 것이 감히 우리의 허락도 없이 세례를 주느냐 라고 문책하는 말이다. 같은 질문을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께도 했다. 세상의 권세를 잡은 자들에게는 구원의 복음이 필요 없다. 그들에게는 메시아도 필요 없다. 그들에게 세례 요한이나 예수님은 그들의 안정된 지위를 위협하는 걸림돌일 뿐 이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실체는 걸림돌이 아니라 모퉁이 돌이다. 그 예수님의 메시아 되심을 알아보고 고백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은 율법에 정통한 학자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생의 길을 갈구하던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예수님을 진심으로 만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존재를 알린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며 이스라엘의 왕이다. 그분은 세상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시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천사들이 예수님을 보좌한다.

2023년 1월 8일 일요일

하나님이신 예수님 (John 1:1-18)

      사도요한은 인생의 말년 에베소에서 요한복음을 쓰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제자였던 그는 요한 공동체를 이끌면서 예수님의 말씀과 복음을 전하고 있었지만, 유대교와 로마의 탄압으로 심한 고난 속에 있었다. 또한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는 영지주의자들의 정교한 논리에 맞서야 하는 위기 속에서, 이미 작성된 공관복음서와 성격을 달리하는 새로운 복음서를 만들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셨다.

     요한복음의 시작은 창세기로부터 모티브를 가져오면서, 예수님의 하나님으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킨다. 천지가 창조되기 훨씬 전부터 하나님과 함께 하신 예수님은 진리와 생명의 말씀이시며, 하나님 그 자체이시다. 그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하신 예수님은 어두운 곳을 빛으로 환하게 밝혀 주셨다. 태초에 빛이 만들어져 혼돈속의 세상을 어두움으로 부터 분리한 것 처럼, 죄의 어둠 속에 움크리고 있던 영혼들은 그 빛을 받아 진짜 세상을 보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들이 알고 살아왔던 세상은 가짜였음을 알게 되었다. 그 빛은 바로 예수님이시며,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 우리의 진정한 자유로운 삶이다. 예수님의 영광속에 은혜와 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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