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4월 25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5

요한복음 성경공부 15 (12:1-43)

요한은 제자들 중 가장 마지막까지 살아 남았으며, 핍박과 고난을 온 몸으로 겪었다. 로마에 의한 예루살렘 공격과 성전 파괴 그리고 기독교인들에 대한 로마의 끔찍한 박해 등 세상의 종말같은 상황들을 보며,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했고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달았다. 그는 4복음서중 가장 많은 분량(13-20)으로 예수님의 수난을 기록했다. 요한은 끝까지 남은 자들에게 무엇을 알려 주고 싶었을까?   

 

예수의 왕 되심: 하나님의 백성이 범한 죄를 씻는 속죄 제사와 하나님의 새 백성을 창조하는 새 언약의 제사로 자신을 바침으로써, 하나님의 의로운 새 백성을 창조하여 그들 위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게 하는 것 (요한복음 강해, 김세윤)

 

요한복음 12장에 기록된 대조적 표현들 (contrast)

1)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부은 마리아 - 그 행위를 비난한 가룟 유다

왕으로 기름 부음 받음 - 이 향유를 왜 이렇게 낭비하는가 (12:5)

2)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환영한 무리들 - 예수님의 인기를 질투하는 바리새인들

겸손과 평화의 왕 (9:9) - 이제 다 틀렸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를 따라갔소 (12:19)

3)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자 -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 (12: 24-25)

4) 하나님을 영광되게 하신 예수님 - 이 세상의 통치자

"지금은 이 세상이 심판 받을 때이다." (12:31)

5) 빛의 자녀 - 어둠에 다니는 자

"어둠속을 다니는 사람은, 자기가 어디로 가는지를 모른다." (12:35-36)

6) 예수님을 만나러 온 그리스인들 (이방인) - 예수님의 메시야되심을 부정하는 유대인들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으며, 주의 팔이 누구에게 나타났습니까?" (12:38)

7) 하나님의 영광 - 사람의 영광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보다 사람의 영광을 더 사랑하였다 (12:43)

 

성경에 나타난 비교(comparison): 사람들은 남들과 자신을 비교한다.

아담과 하와: 동산의 다른 과실보다 먹음짐, 보암직한 과실을 먹었다. 하나님처럼 됨

- 결과: 동산에서 쫓겨남, 평생의 노동, 해산의 고통, 죽음

가인: 하나님이 아벨의 제사만 받으심을 질투했다.

- 결과: 살인, 세상을 돌아다님.

사울왕: 백성들 사이에 다윗의 인기가 더 높음을 시기함. 하나님이 진짜 왕임을 망각

- 결과: 다윗을 죽이려고 함, 전쟁에서 전사

 

하나님은 성경전체를 통해 우리에게 물어 보신다. 네가 지금 어디에 있느냐?

나를 섬기려고 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너라 (12:26)

이것이 선하고 참 진리의 길이다. 너는 이 길을 택할 것이냐?

1) 그 길을 택할 때 우리는 거듭남으로 우리의 진짜 모습 (아름다움)으로 변화한다.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모습: 아름다움, 풍성함, 본질적 모습 - 하나님의 형상

2) 그 길에는 끝이 없다 (진리의 영원, 영속성). 그러므로 그 길을 선택하고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포기하지 않는 꾸준함 (비록 길에서 벗어나더라도)이 나를 성장하게 한다.

3) 그 길에서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결코 끊어지지 않는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서 죽으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12: 24-25)

 

예수님은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하나님의 계시와 구원의 중보자요, 하나님의 왕권을 대행하는 왕 또는 하나님의 아들임을 드러냈다.

- 신약성경의 케리그마 (복음선포); 예수님의 수난, 부활, 만유의 주로 높임 받음 ( 2:6-11)

2024년 3월 28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4

 요한복음 성경공부 14 (11:1-57)

죽은 나사로를 살리신 예수님: 예수님의 부활을 암시하는 중요한 표적 (요한복음에만 기록됨) 

왜 공관복음에는 기록되지 않았을까? 야이로의 딸을 살리심 (5), 과부의 아들을 살리심 (7)

예수의 제자들도 모두 목격한 사건이었지만, 요한은 이 표적의 중요한 의미를 알려주고자 했다.

요한복음의 첫 표적: 혼인잔치에서 물이 포도주로 변화 (예수님에 의한 새 시대의 도래)

요한복음의 마지막 표적: 죽음에서의 부활 (영생 - 새 시대의 궁극적 목적)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곧바로 오시지 않았다:

나사로의 죽음을 알고 있는 예수님 - 이틀동안의 고민과 갈등, 그리고 눈물 (인간적인 모습)  

100% 인간, 100% 신인 예수님 - 유대지도자들의 박해, 십자가의 고통, 제자들이 겪을 고난, 예수님이 떠난 후 세상에 남겨질 제자들에 대한 걱정

예수를 죽이려는 음모가 꾸며지는 계기 - "이 사람을 그대로 두면, 모두 그를 믿을 것이요, 그렇게 되면 로마사람들이 와서, 우리의 땅과 민족을 빼앗아 갈 것입니다 (11:48)"

 

하나님은 우리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신다.

죽음과 병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 부정적 이미지, 세상의 마지막, 죄의 결과

그 죽음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하시는 예수님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병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될 것이다 (11:4-5)"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그에게서 드러나게 하시려는 것이다 (9:3)"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본질이 드러남 (창조성, 생명, 사랑, 신비, 우주, 불변함)

"나는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3:14)" - 존재 자체, 모든 것의 모든 것

 

예수님의 영광

로마시대 가장 극형인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신이 인간의 모습으로 인간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 

- 예수님의 본질적 사명을 드러냈다 (No Cross No Crown)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사람은 죽어도 살고, 살아서 나를 믿는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11:25-26)"

 

나의 영광 (성령의 열매)

세상에서 성공, , 명예로울 때 즉 남과의 경쟁에서 승리할 때 영광을 받는다고 착각한다.

- 나의 본질: 하나님의 성품, 형상을 지닌 인간 (절대로 변화하지 않는다)

- 나의 실존: 일만 달란트 빚진 자 (스스로의 행위로 구원받을 수 없다)

본질과 실존사이의 엄청난 차이로 인해 고민과 갈등하는 나의 모습 (거듭나기 이전의 나)

예수님으로 인해 변화된 나의 실존: 택하신 족속, 왕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하나님의 자녀

죄의 용서때문에 본질과 실존사이의 차이가 없어지고 나의 본질이 드러났다.

나의 영광스러움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알아야 한다.

 

질문: 나는 언제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벧전 4:8-11)

무엇보다도 먼저 서로 뜨겁게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어 줍니다. 불평하지 말고, 서로 따뜻하게 대접하십시오. 모두 자기가 받은 은사를 따라서, 하나님의 여러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관리인으로서, 서로 봉사하십시오. 말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답게 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으로 봉사하는 사람답게 하십시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일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2024년 3월 7일 목요일

나를 위한 예수님의 기도 (John 17)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의 영광을 위해 기도한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을 위해 기도한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을 위한 제물이 되어 죽는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을 위해 죽었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고통을 겪으며 신에게 가야한다.

기독교는 신이 고통을 겪으며 인간에게 왔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을 위해 화려한 성전을 건축한다.

기독교는 신이 직접 그 성전을 허물어 버린다.

 

세상 종교는 인간과 신을 철저하게 구분한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의 마음속으로 들어오신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의 일방적 결정을 따라야 한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의 의지적 결정을 기다려 준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의 형상을 만들어 숭배한다.

기독교는 신이 자신의 형상을 따라 인간을 만든다.

 

세상 종교는 인간이 삶의 멍에를 짊어진다.

기독교는 신이 인간의 수고와 무거운 짐을 진다.

2024년 2월 21일 수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3

 요한복음 성경공부 13  (10:1-42)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

 

요한은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언급했던 말씀들을 기록하면서 당시의 거짓 지도자들과 영지주의자들의 잘못된 인도함을 경계하고자 했다.

 

A) 예수님과 거짓 지도자들의 대조

 

나는 양들이 드나드는 문이다 (10:7) - 누구든지 이 문으로 들어오면 구원을 받고,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목자다 (10:14); 죄의 대속을 위해 십자가에서의 희생을 예고하셨다.

선한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서 이끌고 나간다 (10:3)

선한목자는 앞서서 가고 양들은 뒤따라 간다 (10:4)

선한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10:11)

선한목자는 우리에 속하지 않은 다른 양들도 이끌어 와야한다 (10:16)

 

시편 23 - 양의 시각에서 바라본 선한 목자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한다

내 영혼을 소생시킨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나를 지킨다

원수의 눈앞에서 나를 먹이시고 용기를 주신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바라보신다

 

거짓 지도자: 양들을 지켜주지 않으며 도둑이요 강도다. 도둑은 훔치고 죽이고 파괴한다.

)누가복음 21 - 과부의 전 재산인 두 렙돈까지 성전 건축을 위한 헌금으로 바치게 만든다.

    돈으로 바친 헌금은 성전 보수와 제사장의 욕심을 채우는데 쓰였다.

 

B)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과 예수님을 받아 들이지 않은 유대인들

 

제자도: 제자는 의지적으로 1) 선한 목자와 거짓 목자를 구분하여, 2)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듣고 그 인도하심을 따른다. 하나님은 오직 인간에게만 자유의지를 허락하셨다 (동물은 본능에 의해 행동한다). "의지는 모든 선택의 대상 앞에서 자유롭다. 의지는 최고로 자유로우므로, 의지는 예속상태로 강요될 수 없다 (토마스 아퀴나스)"

*의지적 지적 호기심 (volitional intellectual curiosity); 미래의 인간은 인공지능을 지배하는 10%의 인간과 인공지능에 지배 당하는 90%의 인간으로 구분된다. 의지를 갖고 영적인 지혜를 추구해야 한다. (선과 악, 참 진리와 거짓을 판단하는 지혜)  

 

목자는 양을 알고 양은 목자를 안다. (10:14) - 하나님은 나의 본질적 가치를 귀하게 여기시며, 제자는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의지적으로 받아들인다.

"내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따른다.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10:27-28)"

 

창세기-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를 잘못 사용함으로 인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짐 (죄의 도입)

요한계시록-문을 두드리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의지적으로 문을 열어야 한다 (용서)

"볼찌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요한계시록 3:20)"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은 유대인들

당신이 그리스도인지 아닌지를 분명히 말하시오 (10:24)

당신은 사람이면서,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하였소 (10:33)

2024년 2월 15일 목요일

성령을 약속하시는 예수님 (John 16:1-33)

      사람들은 절대적인 존재인 신의 형상을 마음대로 만들어 경배한다. 그 신을 돋보이는 형태로 내 옆 가까운 곳에 두고자 한다. 종교적인 사람들은 그 눈에 보이는 신이 나의 부와 명예와 행복을 보장해 줄 것으로 믿는다

    예수님을 따라 다니던 많은 사람들 역시 같은 심정으로 예수님을 대했다. 제자들의 어머니까지 예수님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 자기의 아들들이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를 부탁할 정도였다. 계속해서 예수님께 표적을 구했고 예수가 진짜 그리스도인지 물어 보았다. 그 예수님이 자신의 떠나감을 알렸을 때 당연히 제자들은 놀라며 두려워했다. 자신들이 원하는 것을 아직 예수님이 보여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온갖 고생을 하며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세상적 보상을 원했던 제자들이었다

 

    예수님의 그리스도되심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예수님의 떠나감이 오히려 제자들에게 유익함이라는 예수님의 위로는 하나님의 의로움이 실제로 나타나는 복음의 위대함으로 증명되었다.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한 오해와 왜곡을 성령께서 바로 잡아주셨다. 죄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 들이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의 의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증명되었다. 세상의 거짓권세는 이미 심판을 받았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새 계명이 예수그리스도에 의해 완성 되었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종교적인 행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눈에 보이는 세상적 복에 모든 관심을 갖고 상대적 우월감 또는 박탈감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모습은 결코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이 아니다.  

2024년 1월 25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2


요한공부 성경공부 12 (9:1-41) 눈을 뜨게 해 주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며 (8) - 육체의 눈, 영혼의 눈

한 눈먼 자를 바라보는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1)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은 누군가의 로 인하여 발생한 육체의 질병으로 바라보았다.

"선생님, 이 사람이 눈먼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9:2)"

"이 사람이 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이었다는 당신의 아들이오? (9:19)"

"안식일을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아서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사람이 아니다 (9:16)"

 

예수님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던 유대인들은 그 맹인이 정말 보지 못하는 자였는지에 대해 논쟁했고, 어떻게 치유되었는지 궁금해 했고 치유받은 날이 안식일이었음을 트집 잡았다.

눈을 뜨고 있지만 편견은 그들을 소모적인 논쟁으로 이끌었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들은 정말로 눈 뜬 장님들이었다.

 

2) 예수님은 하나님이 바로 이 눈먼 자를 통해 일하신다고 대답하셨다.

"너희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시는지 주목해 보아라 (9:3-5)"

전도서 7:13 -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을 보라

출애굽기 14: 13 -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예수님에 의해 육체의 눈을 뜨게 된 사람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경배했다. 하나님은 소경이었던 사람의 입을 통해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하게 하셨다. 이 사람은 태어날 때 부터 앞을 보지 못했고 실제로 안식일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 그러나 자신에게 주어진 치유의 경험을 통한 단순한 고백은 너무나 강력한 메시지가 된다.

 

I see의 두 가지 의미; 1) 시각적 이미지를 인식한다, 2) 보여지는 것의 의미를 이해한다.

눈을 통해 보여지는 사물과 상황들 속에 우리가 인지해야 하는 것들이 숨겨져 있다. 나의 하루 하루의 삶속에서 눈으로 보여지는 상황들 이면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의 손길이 있다. 나의 삶을 뒤돌아 보면 그 삶의 순간순간 나를 인도하시는 성령님의 손길이 있다.

 

예수님을 보면서 그 이면에 존재하시는 영이신 하나님을 인식해야 한다. 

3차원적 존재인 인간은 죽음이라는 시간적 한계와 지구라는 공간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그 속에서만 살아가기에 인간은 제한된 물질을 두고 욕심과 경쟁으로 서로 사랑하지 못한다.

만약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 (영생)이 주어지고 시간적 공간적 한계를 넘어서게 되면 (3.5차원, 4차원), 인간은 새로운 가치관과 목표를 갖게 된다.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도 훨씬 가치있게 변하게 되고, 인간의 사고도 더 넓게 확장된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하나님의 나라는 바로 그 변화된 차원의 세계를 우리에게 제시했으며, 실제로 예수님은 온 몸으로 그 변화된 가치의 삶이 무엇인지 보여주셨다. 그 예수님의 삶을 우리도 따르기로 용기있게 받아들이는 것이 믿음의 본질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고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항상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 소원을 들어주시는 존재가 아니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온전히 이루어지는 뜻을 이루기 위해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신다. 하나님이 이루어 가시는 그 새로운 차원의 삶을 볼 수 있는 눈은 오직 말씀을 통해서만  갖게 되며, 그때 우리는 진짜 눈 뜬자가 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신(GOD)이 있다. 하나는 사람들이 소원을 빌며 기도할 때 찾는 종교적인 신이다. 다른 하나는 아름다운 온 세상과 우주를 만들고 질서를 유지하는 신비로운 신이다. 나는 그 신비로운 신의 존재를 믿는다"  - 아인슈타인  

 

2023년 12월 22일 금요일

포도나무이신 예수님 (John 15:1-27)

   예수님은 포도나무요 하나님은 농부이시며 우리는 그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이다. 포도나무가 의미하는 것은 풍성한 생명과 풍요로운 축복이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그 포도나무에 연결되어 머물러 있어야 한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세상의 풍파속에서 그 믿음을 지키면서 버터야 (abide by)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조건적으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시지 않는다. 친구되시는 보혜사 성령님 (parakletos)을 우리 각자의 마음 속에 보내셔서 그 믿음을 확증해 주시고 우리를 인도하신다고 약속하셨다. 세상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살아간다면 세상은 우리를 미워할 것이기 때문이다.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우리를 미워한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교리에 근거한 도그마적인 해법만을 우리에게 준다. 현대인의 삶은 너무나 다양화되어 있고 각자가 처한 문제점들은 획일화된 가르침으로는 해결될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 각자를 선택해서 세상에 두어 사랑의 열매를 맺도록 계획하셨다. 세상의 기준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썩어 없어진다. 그러나 하나님 기준으로 맺어지는 열매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그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거룩함이고,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사랑의 열매는 영원히 썩지 않는다.

 

     포도나무이신 예수님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만 그 풍성한 생명이 그대로 나에게 연결된다. 열매 맺음의 첫번째 단계는 생명의 연결이다. 그 다음은 성숙이며 꽃 피움이고 최종적으로 사랑의 열매가 맺힌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삶의 참 의미이다.

2023년 12월 11일 월요일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John 14:1-31)

    근심과 두려움의 근원은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창조의 본질과 욕심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극복하지 못하게 되면 우리는 근심과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게 된다.

 

1) 인간의 삶은 고난과 더불어 살도록 설계되었다. 즉 수고하고 땀을 흘리며 일해도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며, 자녀를 낳고 기르는 고통을 겪도록 지음 받았다. 그러나 인간들은 하나님께 그 수고와 고통을 피하게 해달라고만 기도한다.

 

2) 모든 것 위의 모든 것이 되시는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은 평범하며 보편적인 사람의 모습으로 세상에 오셔서 낮아짐과 순종의 모습을 보이셨다. 그러나 사람들은 스스로 절대적 존재가 되고자 하는 욕심으로 오직 특별함만을 추구한다.

 

3) 피조물로서의 한계성을 가진 인간은 결국에는 죽을 운명이며 그 죽음의 비존재성에 굴복해야 한다. 그러나 인간들은 영원히 살것처럼 성공과 부를 끝없이 추구한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영원히 같이 살고자 했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신 예수님은 제자들을 곧 떠나게 됨을 알려주셨다. 3년간 예수님을 따라 다니며 함께 생활했던 제자들은 근심하고 두려워했다. 다시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야 할 것으로 생각했던 제자들은 - 실제로 예수님의 죽음 이후 대부분의 제자들은 옛 삶의 공간으로 돌아갔다 - 그 떠나심의 의미가 무엇인지 아직 이해하지 못했다. 근심과 두려움은 진리를 깨닫지 못하게 만든다.  

 

    근심과 두려움의 진짜 원인은 우리의 욕심과 육체의 죽음이다.

 

     고통과 혼돈의 삶을 근심과 두려움으로 살아가며, 거기서 벗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 삶 속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붙들며 살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시며,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우리는 하나님께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우리들은 성령의 가르침과 인도하심을 따라 서로 사랑하며 살아가야 한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인류 전체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뜻이다. 예수님만이 우리에게 진짜 생명을 주신다.

2023년 11월 23일 목요일

섬김의 본을 보여주신 예수님 (John 13:1-38)

   신약시대에 찾아온 손님들의 발을 씻어주는 것은 그 집의 종들이 하는 일이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의 발을 씻어주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스스로 종의 위치에서 주인과 손님을 섬기듯 행하셨다는 의미이다. 예레미야가 예언한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는 방법을 직접 보여주신 것이다. 구약의 모든 옛 계명들을 완성하는 최종적인 계명은 바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며 서로 사랑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종의 자리에서 섬기는 것이다. 그때 비로소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예수의 제자들임을 알아보게 된다.  

 

      예수님은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여전히 구약적 시각으로 우리들은 돈, 명예, 지위, 안정된 삶만을 추구하고 있으며 이러한 세상적인 것들을 소유해야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것으로 착각하며 살고 있다. 우리는 명령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높은 지위에서 군림하고 싶어한다. 우리는 부자가 되고 싶어한다. 우리는 물질적 만족을 누리며 살고 싶어한다. 우리는 섬김받고 싶어한다.

 

     우리들은 여전히 구약적 축복에 머물러 있다.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이 모든 것들을 소유해야 한다는 잘못된 믿음이 우리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한다. 우리들은 세상의 헛된 것들을 우상으로 섬기며 살고 있다. 예수님이 그토록 경계하셨던 바리새인들이 보여주었던 잘못된 믿음의 행위들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다.

2023년 11월 14일 화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11

 요한복음 성경공부 11 (8:12-59) 자유케하시는 예수님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 (8:12)

더 이상 어둠의 막다른 길 (no way out under dark)에서 헤매지 않는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지혜의 영역을 훨씬 넘어서는 초월적 영역에서 행하신다.

 

A. 인간이 처한 육체적 한계

"너희는 육체 (사람이 정한 기준, human standard)를 따라 판단한다" (8:15)

우리들은 물질적인 한계 (3차원적)의 프레임으로 하나님을 바라본다. 우리는 우리가 아는 것이 전부라고 착각하지만, 우리는 이 현상세계조차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ex) 뉴턴의 물리법칙 - 아인쉬타인의 상대성 이론 - 하이젠베르크 불확정성의 원리 (양자역학)

 

"우리는 그분에게 육체적인 어떤 것을 감히 부과해서는 안되며 그분을 우리의 감각의 수준으로 끌어내리려 해서는 안된다" (죤 칼빈, 기독교 강요)

 

유대인들; 금송아지를 만들어 하나님이라고 숭배한다.

현대인들; , 명예, 지위를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고 숭배한다.

우리의 공허한 정신과 죄성은 '하나님'이라는 이름의 새로운 신을 우상으로 만들어 섬긴다.

 

B. 인간이 처한 죄의 한계

말에 거하면 - 참 내 제자가 되고 - 진리를 알찌니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2)

말에 거함; 태초에 말씀이 있었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1:1-2), 말씀대로 사는 것

제자;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1:12)

진리; 아버지께서 주신 독생자의 영광이며, 그 안에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1:14)

자유; 우리는 모두 그의 충만한 데서 은혜위에 은혜 (blessing after another)를 받았다 (1:16)

        끊임없이 베푸시는 선물 (gift after gift after gift, 메세지, 유진 피터슨)

 

유대인; 율법을 지킴으로 자유할 수 있다고 주장 - 불가능하다

영지주의; 우리의 노력으로 수련을 통해 진리를 깨닫는 수준으로 올라갈 수 있다 - 댓가로 얻음

예수님; 예수 (로고스)가 그리스도임을 받아들일 때 진리를 알게 된다 - 댓가없이 주어짐

 

유대인들의 자유; 간음한 여인을 율법에 따라 죽일 수 있는 자유

예수님의 자유; 죄지은 여인을 용서하여 살리는 자유

 

C. 인간이 처한 편견의 한계 (유대인의 특권의식)

유대인들의 질문; 당신은 누구요? (8:25), 우리의 조상은 아브라함이오 (8:39)

예수님의 질문;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예수님은 드디어 자신을 드러내신다 -하나님과 일체이신 예수님, 아브라함보다 먼저 계신 예수님, 그리스도이신 예수님

편견 (prejudice, stereotype)을 극복하지 못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으로 알아보지 못한다.

 

베이컨 (Francis Bacon, Knowledge is power); 동굴의 우상 (주관적 선입견), 극장의 우상 (무비판적 수용), 종족의 우상 (집단이기주의, 비이성적 신념), 시장의 우상 (언어적 오류, 과장된 상품명)

 

하나님을 경험한다는 것은?

나에게 주어진 것을 누리며, 받은 복을 수동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다. 매 순간 내가 한 선택이 옳은 선택이 되도록 최선을 다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려움에 처했을 때 어떻게 하나님께 기도하며 나아갔는지, 그리고 그것을 통해 얼마나 성장했는지의 과정들을 의미한다.    

최근 글

히브리서 성경공부 15

  히브리서 성경공부 15 ( 히 11:23-40)   A. 모세의 삶 - 모세에 대한 성경의 기록 ( 중보자 mediator, 그리스도의 예표 )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