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8일 토요일

실존과 본질 사이

 


   든 사물들은 본질이 있다. 의자는 앉음과 쉼이라는 본질을 갖고 있다. 펜은 필기라는 본질이 있다. 본질은 그 사물의 존재 이유가 된다. 바꿔 말하면 본질을 벗어난 사물은 그 존재의 이유가 없어진다. 그러나 인간의 경우는 이 논리에서 벗어난다. 비록 본질을 벗어나 있지만 여전히 의미있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본질을 탐구해온 계몽주의 철학자(데카르트, 칸트, 파스칼 등)은 스토아학파의 이론을 계승하면서 이성적으로 사고하는 생각하는 힘, 논리적 판단과 합리적 행동 등이 인간의 본질이라고 주장했다. 그들이 주장하는 그 본질에 충실한 사람들은 과연 얼마나 될까?  

   율법이 지배하던 유대사회에 예수님의 말씀과 행함은 혁명적이었다. 성전의 제사와 율법준수, 안식일과 절기 등 유대교의 본질들을 모두 깨뜨려버리신 예수님은 그들이 갖고 있던 본질에 대한 근본적인 도전을 던지셨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인간의 본질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율법은 단지 일시적인 그림자에 불과했으며 인간들의 죄성을 드러내는 역할 뿐이었다. 죄라는 인간의 실존을 율법은 완전하게 해결해 주지 못했다.  

   죄의식과 불안감 속에 있는 인간의 실존적 모습은 역설적으로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의 시작이다. 그것을 위해서는  죄의식에도 불구하고 용납됨을 용납하는 용기 (폴 틸리히)가 필요하며, 불의한 자가 의롭게 된다 (마르틴 루터)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죄인들과 함께 하신 예수님은 나의 실존 속으로 들어오신다. 이 놀라운 은혜만이 본질과 실존사이의 엄청난 간극을 메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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