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큰 믿음을 소유하기를 원한다. 그러나, 믿음의 정도를 양으로
측정하는 것은 쉽지 않으며, 그러한 믿음을 소유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정의하기도 어렵다. 왜냐하면 믿음은 만질 수 있는 물질이 아니기 때문이다. 10명의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와서 병의
나음을 간절히 구했다. 예수님은 그들의 병을 바로 고쳐주지 않았다. 대신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몸을 보이라고 말씀했고, 제사장에게 가는 길 도중에 그들은 그들의
피부병이 완치되었음을 깨닫고 기뻐했다. 그들 중 단 한 명만 예수께 돌아왔는데 그는 사마리아인이었다.
열명중 한 명, 사마리아인이 예수께 돌아왔다.
율법에 의하면 격리되어 살던 피부병 환자는 그 병이 나았을때 제사장에게 가서 몸이 깨끗하여 졌음을 보인 후 제사장의 허가를
받고 다시 마을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다. 예수께 돌아오지 않은 아홉병은 아마 제사장에게 가서 그들의
나음을 확인받고 다시 공동체로 돌아가고자 했을 것이다. 율법이 지배하던 시대에는 당연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사마리아인은 그 당연한 율법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를 표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예수님은 그에게 그의 믿음으로 인해 구원을 받았다고 선포했다.
믿음으로 인해 구원받았다.
누구나 세상의 어려움과 고통으로 부터 자유롭고 싶어한다. 그러나 고난은 피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믿음의 삶이 무엇인지 알려 주신다. 예수님께 돌아오지 않은 아홉명의 나병환자들 처럼 단지 육체의 병의 나음에 기뻐하고 정상적인 삶을 회복한 것에 만족한다면 그 고난을 통해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받을 수 없다.
믿음은 물질을 소유하듯 많고 적음, 크고 작음의 문제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내가 받은 은혜를 묵상하고 그 은혜가 거저 주어졌음을 인정하며, 낮은 종의 자세로 그 은혜의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이다. 그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는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한다. 세상에서의 삶보다 더 소중한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이미 임했음을 아는 자는 진짜 복된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