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0월 3일 월요일

하늘에 기록된 이름 (Luke 10)

   


    예수님은 70명의 제자들을 파송하셨다. 그들은 가는 곳 마다 평화를 전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들을 굴복시켰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대로 어느 집에 가든지 평화를 빌어 주었고, 그 집에 머물며 주는 것을 먹고 마셨다. 그들의 메시지와 전도방법은 어린아이들 처럼 매우 단순했으며 순수했다. 그들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를 보는 눈과 그 말씀을 듣는 귀를 가진 복된 사람들이었다. 승리의 기쁨에 넘쳐 돌아온 그들은 자신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다는 것으로 진심으로 기뻐했다

     전도는 평화를 전해 주는 것이다.

     반면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 낸 업적과 성과를 보며 기뻐한다. 교회내에서 교인들은 수많은 종교적 활동들 (헌금, 집회참여, 봉사 등)의 성과물로서 주어지는 칭찬과 자기만족 그리고 직책에 목말라 한다.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루어 놓은 것 같은 수많은 자기 의로움이 너무나 자랑스럽지만, 정작 그 속에는 예수님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사람들은 자기 의를 드러내고 싶어한다.

     한 율법 교사는 자신의 의로움을 자랑하고 싶어 예수님을 시험했다. 그는 율법을 잘 알고 있었지만 율법의 정신 -이웃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 을 삶에서 실천하지 않았고, 그저 자기를 다른 사람들에게 옳게 보이고 싶어했다. 내 삶 전체에서 내가 이루어 낸 것은 하나님이 준비해 주신 것에 비하면 너무나 하찮은 것들 뿐이다.  

    

     하나님은 내가 구하지 않은 것들까지 준비하셨다. 하나님은 태초부터 나를 위해 생명나무까지 준비하셨으며 ( 3:22), 예수님을 통해 영생의 길을 허락하셨다 ( 3:16). 내가 내세우고 싶어하는 나의 의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마르다처럼 분주하게 살아가며 내가 옳다고 여기는 것들을 하고 있다. 스스로의 의를 쌓기 위해 많은 일을 하면서 염려하며 사는 삶의 결국은 허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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