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31일 월요일

죄를 사하시고 용서하시는 예수님 (John 8:1-11)

      이 사건은 요한이 쓴 복음서에 포함되지 않는 내용이었지만, 후대에 초대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끝나고, 배교자들에 대한 용서의 필요성이 있게 된 후 추가된 내용이다. 이른 아침에 한 여인이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오게 되었다. 남자 없이 연약한 여자만 잡혀 왔으며 이는 예수를 시험하기 위해 무리들에 의해 미리 계획된 범죄였다. 가련한 여인은 바로 우리의 모습이다. 우리들은 세상의 악함에 이용 당하며, 세상의 문화에 휩쓸려 죄를 짓는 약한 존재이다. 여인을 잡아 온 무리들은 이미 십계명을 어겼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아라). 그들은 세상의 악에 대해 그것을 악이라고 말하는 예수를 죽이고자 했다. 자신들의 죄를 감추기 위해 모든 수단을 정당화하며 스스로 의롭게 보이고 싶어했다. 

 

    악인들은 그들을 악하다고 말하는 자를 미워한다.

 

     모두가 예수님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상황에서 예수님은 모든 인류에게 선포하셨다. "나도 너를 정죄 (condemn)하지 않는다. 다시는 죄 짓지 말아라" 실패하고 유혹에 넘어지는 것은 죄가 아니다. 다시 일어나지 않고 극복하지 못하며,  그 상태에 머물러 있는 것이 죄이다. 예수님은 바로 나의 죄 때문에 십자가의 죽음을 앞두고 우리 모두를 용서하셨다.  

     죄사함 (delete)은 죄인이 죄에 대한 법적인 책임으로부터 벗어남을 뜻한다. 판결의 주체는 제 삼자, 즉 판사나 제사장의 몫이지만, 판사나 제사장은 죄로 인한 피해자가 아니므로 그 죄를 용서할 수는 없다. 죄의 용서 (forgive)는 도덕적, 사회적, 관계적 구속으로부터 해방됨을 의미하기에, 용서는 피해자의 몫이다. 반면 피해자에게 법적인 죄 사함의 권한은 없다. 진정한 죄 사함과 용서의 권한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있다. 왜냐하면 그 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초월적 신성), 동시에 우리의 모든 죄와 고통을 체휼하시는 사람의 아들 (인성)이시기 때문이다.

2023년 7월 27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7

 

요한복음 성경공부 07 (6:1-15) - 가장 귀한 가치

 

A. 광야생활   

광야에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예수님의 모습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모세의 모습을 떠오르게 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실체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모세가 기록한 것이 나를 두고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너희가 모세의 글을 믿지 않으니, 어떻게 나의 말을 믿겠느냐?" (요한복음 5:46-47)

구약시대

신약시대

만나, 메추라기 (제한적)

오병이어 (풍성함)

모세를 통한 간접적 공급

예수를 통한 직접적 공급

율법 

영생

가나안

하나님의 나라

금송아지를 숭배한 백성들

예수를 억지로 왕 삼으려는 무리들

 

의/식/주;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들에게 의식주의 문제가 발생했다. "너는 죽는 날까지 수고를 하여야만, 땅에서 나는 것을 먹을 수 있다 (창3:17)"

 

정당한 노동과 그 댓가는 하나님이 정해 주신 인간의 삶이다. 의식주의 문제는 여전히 인류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이며, 농업기술을 통한 식량증산은 문명 발전의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사람들은 필요 이상으로 의식주를 추구한다 (욕심, 불안, 남과의 비교) - 자기 과시, 자기 의, 자기 실현의 결과물로 왜곡; 세속적 문화, 최고의 가치를 부여함 

 

예수님은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먹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들의 백합화와 공중의 새들이 솔로몬의 모든 영광보다 훨신 낫다 (마6:28-30).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진짜 가치; 하나님의 나라, 영생

 

광야에서 매일 일용할 양식을 받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를 만들어 숭배했다. 광야에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의식주를 해결해 준 예수님을 왕으로 삼으려 했다. 사람들은 보이지 않는 진짜 가치보다는, 눈에 보이는 확실한 실체를 원한다.

질문) 나는 왜 예수를 믿는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기 때문에?

 

B. 시험당하신 예수님

당시 스토아 철학의 영향 - 자신의 운명 (죽음, 가난, 고통 등)을 받아들이며 살아가는 것

긍정적; 삶의 만족, 스스로의 삶을 묵상, 겸손 - 훈련을 통해 가능하다

부정적; 불만, 분노, 삶의 본능적 욕구에 집중, 이기적, 수동적 삶의 자세

영지주의는 이러한 운명론적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구원의 참지식과 수련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눈으로 확인한 사람들은 그들의 운명적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예수님을 왕으로 삼고자 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왕이 아니다.

 

예수님의 소명적 삶; 온 인류의 구원, 사랑, 새창조,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스스로를 위해서는 초월적 능력을 사용하지 않았다.

금식 후에 떡을 만들어 먹지 않았다. 누워 잘 곳이 없었다. 먼길을 걸어서 다니셨다. 자신에게 향한 조롱을 묵묵히 견디셨다. 생명의 위협에도 대응하지 않았다.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사명의 완수를 위해 모든 사람들을 위한 사랑을 위해서만 능력을 사용하셨다.

 

예수님의 삶을 묵상해야 하는 이유

내 삶에 주어진 것들에 대한 익숙함과 당연함은 그 본래의 소중한 가치를 잊어버리게 만든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소명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남은 십자가)

2023년 6월 22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6

 

요한복음 성경공부 06 (5:1-30) –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님

 

편견 (prejudice), 또는 고정관념 (stereotype)은 나에게 주어진 축복의 환경을 잘못 이해하게 만든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제대로 누리지 못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세계가 인간의 욕심, 이기심, 경쟁심, 의로움으로 왜곡되어 졌고,인간들은 그 축복을 혼자 차지하려고 한다. 인간은 자신이 죄의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죄의 결과를 항상 하나님의 탓으로 돌린다.

 

에덴동산 - 욕심 – 당신이 나에게 주신 여인이 나를 유혹했다 (창 3:12)

최초의 가정 (아담,하와, 카인, 아벨) - 경쟁심 - 내가 내 동생을 지키는 자인가 (창 4:9)

광야, 시내산 - 불안, 의심 - 광야에서 우리가 죽게 생겼다 (출 14:11)

가나안, 이스라엘 - 자만 – 당신이 우리를 사랑했다는 증거를 보여라 (말라기1:2)

 

사람들의 편견 (요한복음 5장)

 

베데스다 못 주변에 모인 사람들; 천사가 내려와 물이 움직이면 무조건 먼저 들어가서 병의 나음을 얻기 위해 (요 5:4, 이 구절은 고대 사본에는 없는 구절임) 서로 경쟁적으로 살아간다.

 

38년 된 병자; 나를 들어서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다. 남들이 나보다 먼저 못으로 들어간다 (요 5:7)  

 

유대사람들; 안식일에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은 옳지 않다 (요5:10)

 

예수님은 이 편견을 깨뜨리신다. 낫고 싶으냐 (요 5:6),  일어나서 네 자리를 걷어 가지고 걸어 가거라 (요5:7),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5:17)

질문) 베데스다 못이 하나님의 축복의 장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했을까?

 

특정한 장소, 특정한 시간에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죄사함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전히 그 특별함에 집착한다 (영지주의적 구원론). 그 특별함을 누리기 위해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강해지고 완전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이 받은 특별한 은혜는 스스로의 노력으로 주어졌다고 오해하게 된다 자신이 받은 특별한 치유의 결과가 성령의 열매로 나타나지 않고 자기 의와 성취감, 오만으로 나타난다.

 

인간은 절대로 완전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다. 스스로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의지하는 모습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38년된 병자를 그 모습 그대로 만나 주셨으며, 그의 의지를 물어 보았다. 병고침과 죄사함의 능력은 오직 예수에게만 있다.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분을 믿는 사람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갔다 (요 5:24)”

“아버지께서 자기 안에 생명이 있는 것처럼,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셔서, 그 안에 생명이 있게 하여 주셨다. 또 아버지께서는 아들에게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다 (요 5:26-27)”

 

우리가 가져야 할 세 가지 용기 (폴 틸리히)

1. 두려움을 떨쳐내는 용기 - 나의 약함, 죄성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나아감

2. 할 수 있다는 용기 - 하나님이 나의 힘되심을 인정함  

3. 거절당할 용기 -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에 순종함 

2023년 6월 5일 월요일

배척당하신 예수님 (John 7:1-52)

  편견은 사람들이 이성적이고 정상적인 판단을 하지 못하게 만든다. 메시아에 대한 왜곡된 소망을 갖고 있었던 유대인과 바리새인들은 바로 눈 앞에 그리스도가 계심에도 불구하고 그분이 메시아임을 알아 보지 못했다. 진리의 길을 알고 있음에도, 그 길을 가지 못하는 것과 같다. 예수님의 형제들도 바로 이 편견 때문에 메시야를 알아 보지 못했다. 예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역시 이러한 편견으로 인해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한다.  

 

     증인된 삶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다.

 

선한 의도는 잘못 받아들여지고, 참되게 살아 가면 이용 당한다. 세상의 문화에 어울리지 못하며, 경쟁에서 뒤쳐진다. 왜냐하면 세상은 참되지 못하며, 사람들은 저마다의 욕심을 채우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세상의 이러한 모습을 악하다고 증언하셨기에, 세상은 예수님을 미워했다 (요7:7).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율법을 주셨지만, 서로 사랑하라는 율법의 정신을 진심으로 지키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요7:19).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알지 못하는 무리는 저주받은 자들이다 (요7:49) 라고 할 정도로 율법을 신봉했지만, 정작 그들이야말로 율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편견에 따라 율법을 적용했다. 그들은 율법에 맞게 사람을 판단해야 한다는 니고데모의 의견조차 묵살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부터 오신 분임을 알아본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자기 멋대로 해석하여 자기 마음대로 말하며 자기의 영광만을 구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전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기 때문에 진실하며 불의가 없으시다. 세상은 진실하며 불의가 없으신 예수님을 아직 받아들이지 못했다.

2023년 5월 24일 수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5

 

요한복음 성경공부 05 (4:1-42) -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

 

영원한 진리에 대한 목마름 (이사야 55장 1-13절);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 다윗에게 약속한 확실한 은혜니라"

 

A.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

야곱의 우물; 유대와 사마리아 공동의 조상인 야곱시대부터 있던 우물로 옛 율법을 상징. 율법은 목마름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결한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의 근원이 되신다. "내가 주는 물은 그 사람 속에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될 것이다" (요 4:14)

 

- 제 육시; 요한복음의 시간은 로마시간을 따른다. 그러므로 제 육시는 현재 시간으로 오전 6시 아니면 오후 6시이다. (공관복음은 유대시간을 따르므로 모든 기록된 시간에 6시간을 더해야 현재의 시간과 같다)

- 사마리아; 앗수르에 멸망 당한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혼합정책으로 10지파가 모두 사라지고 민족 정체성을 잃어 버렸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들을 무시했다.

- 여인의 남편들; 이 여인은 한 남편에 만족을 못해서 다섯 명이나 남편을 바꾼 음란한 여인이 아니다. 그 당시 사회상황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여인은 피치 못할 사연으로 다섯 번이나 과부가 되어 버린 가장 가련한 여인으로서 인생의 밑바닥 (고아, 과부, 병든 자)을 살고 있었다. 메시야와 진실된 예배에 대한 간절함이 있었다.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되는 모습 (예수님에 대한 호칭)

선생님, 유대 사람 - 야곱보다 위대한 분 - 선지자, 예언자 - 그리스도

영원한 생수를 예수님께 직접 구함.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있다 (요 4:15)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모든 것을 알려 주실 것입니다 (요 4:26)

예수님은 스스로 그리스도임을 밝히셨다 (요 4:26, 신약 성경의 유일한 기록)

그분이 그리스도이시다 (요 4:29) - 마을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기도의 오류

- 니고데모, 부자청년;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는지를 질문

- 원하는 것을 얻게 해주시면 열심히 교회봉사, 신앙생활 하겠습니다.

- 열심히 교회봉사, 신앙생활 했으니 원하는 것을 주세요.

 

B. 예배의 근본적 변화

제사 중심의 예배 (종교적 의식, 제물, 제사장의 역할)에서 세례 중심 (성령임재, 죄사함, 십자가)의 예배로 변환.

 

제물을 바치는 예루살렘 (유다), 그리심산 (사마리아) 성전 중심의 반복되는 제사의식으로는 절대로 영생을 얻을 수 없다. 하나님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찾으신다. 영과 진리 (in spirit and truth)로 예배드림의 뜻은? by the power of God's spirit, people can worship him as he really is.

 

영지주의자들은 ‘나’와 ‘우리’의 테두리안에 있는 제한된 그룹의 사람들만의 구원을 주장한다. 그룹 밖의 사람들은 ‘그들’에 불과하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을 사람들은 그녀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그들’이었다. 사마리아 여인에게 마을 사람들은 자신을 무시하는, 관계 맺고 싶지 않은 존재였다. 그러나 이제는 생수의 근원인 그리스도를 전하는 대상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예수를 직접 만나고 대화한 후 다시 여인에게 진실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고백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위임 받은 예수에게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오고, 증인의 삶을 사는 우리를 통해 이웃에게 전달된다. ‘나’와 ‘그들’이었던 관계가 '나'와 '너'의 관계로 새롭게 변화 되었다. 예배는 ‘나’와 ‘너’의 소중한 관계가 예수님 안에서 지속적으로 새롭게 형성되는 소중한 시간이다.

2023년 5월 14일 일요일

하나님의 성품

하나님께 인내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인내를 시험할 순간을 주신다.

하나님께 용기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용기를 내야 할 때를 주신다.

하나님께 사랑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사랑할 사람을 보여 주신다.

하나님께 자비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자비를 베풀어야 할 사람을 보내 주신다.

하나님께 선함을 달라고 기도하며 하나님은 선함을 행할 기회를 주신다.

하나님께 열정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열정을 다해 해야 할 일을 주신다.

하나님께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지혜롭게 처리해야 할 갈등을 주신다.

하나님께 힘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어려움을 주신다.

하나님께 건강을 달라고 기도하면 하나님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나를 만들고 세상에 보내실때 이미 하나님의 모든 성품을 가득 담으셨다. 나에게는 인내, 용기, 사랑, 자비, 선함, 열정, 지혜, 힘 그리고 건강이 이미 주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나의 성격을 변화시키거나 나를 더 강하게 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이 언제나 나의 강함이 되어 주시며, 나에게 하나님을 의지할 기회를 주신다. 우리의 하루하루 매 순간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의 때이다.

    삶의 어려움과 갈등이 있는 바로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성품을 드러낼 때임을 알아야 한다.

2023년 5월 9일 화요일

생명이신 예수님 (John 6:16-59)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먹었던 만나와 메추라기는 하루 이상 저장할 수 없었다. 즉 썩을 양식 (요6:27)을 상징하는 것이었고, 일시적인 죄사함을 주는 율법에 기초한 제사의식을 의미한다. 무리들은 예수님이 보여주신 오병이어의 기적을 단지 그들의 배고픔을 일시적으로 해결해 준 사건으로 여겼으며, 예수님의 메시야 되심을 보여 주는 중요한 표적으로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는 그리스도이시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죄사함과 생명에 관한 모든 권한을 받았음을 '하늘로 부터 온 생명의 빵'으로 비유를 들어 말씀하셨지만 유대인들은 이해하지 못했고 받아들이지도 않았다. 유대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하여야 (요6:28)"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인지를 질문했고, 표적을 보여주면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 예수님께서 스스로를 하나님이 보내신 '인자'임을 밝혔지만 그들은 "어떻게 (요6:42-43)" 그것이 가능한지를 물어보았다. 

   

     피조물인 인간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으로 하나님을 이해하려는 시도는 어리석은 짓이다. 인간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역사를 보여 달라고 기도하지만 막상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면 진심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을 무조건적으로 주시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나에게 경험하게 하신다.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무리들에게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양식을 위해 일하라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의 양식을 위해 일해야 한다.

 

     예수님의 살을 먹고 그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난 삶을 사는 사람이며, 그 삶은 예수의 가르침 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증인의 삶이다. 사람들이 원하는 육신의 양식, 즉 돈과 명예 그리고 세속적 쾌락과는 완전히 다른 길을 가는 삶이다. 진짜 생명의 양식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은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 그 삶은 결코 쉽지 않기에 많은 제자들이 실망하며 예수님을 떠났다. 예수님은 지금도 나에게 물어보신다. “너희도 떠나려느냐?”

2023년 4월 27일 목요일

요한복음 성경공부 04

요한복음 성경공부 04 (3:1-16) - 니고데모와의 대화 

 

인간은 모두 죄인이다 (롬 3:23). 인간은 스스로 절대적 선악을 구분할 수 없기에 모두 자기가 생각하는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한다. 그러므로 인간은 인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언제든지 죄를 범할 수 있는 연약한 존재이다. 영지주의는 영적인 것과 반대개념으로 육적인 것을 판단하며, 육에 속한 인간은 연약하며 저급하며 악하다고 여긴다. 이러한 연약함과 죄성을 극복하는 상반된 방법을 니고데모 (유대교, 영지주의적 사고)와 예수님 (절대진리, 하나님의 나라)의 대화를 통해 볼 수 있다.

 

사상적 배경

영지주의; 인간의 영혼은 물질인 육체에 갇혀 있고, 영혼이 육체에서 해방되는 것이 구원이다. 이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비밀스러운 참 지식의 깨달음과 수양이 필요하다. 악한 세상에서의 육적인 삶으로부터 멀어지기 위해서 참 지식을 가진 사람들과 공동체생활을 통해 종말 이후의 삶을 대비해야 한다. 절대적 (absolute), 불변적 (immutable) 존재 (existence)인 '신'은 인간의 삶에 관여하지 않는다. (그리스 철학과 스토아 학파, 프로메테우스)

불교의 윤회사상; 인간의 삶은 생로병사 (生老病死), 즉 태어나서 늙고 병들고 죽는 것으로 정의된다. 모든 인간 (중생)은 수레바퀴 같은 삶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윤회). 자비를 행하고 도를 닦으며 깨달음을 얻은 인간만이 이 윤회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고 (해탈), 지극히 선한 신의 경지 (열반)에 도달한다.

 

니고데모가 바라본 예수님 - 랍비, 선생님,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 표적을 행하는 분 (요3:2), 구원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임을 인식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에 동의하지 않는 니고데모의 반응

예수님; 다시 나지 않으면 (위로부터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 (요3:3)

니고데모; 어머니 뱃속에 다시 들어 갔다가 태어날 수는 없다 (요3:4) 

예수님; 물과 성령(프뉴마, 바람, 생기)으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요3:5)

니고데모;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습니까? (요3:9)

 

니고데모는 약한 육적인 존재인 인간이 구원을 얻기 위해 살아 있는 동안 영적인 수련과 지식을 열심히 공부하여 육체의 죽음 이후에 고귀한 영적인 존재로 변화하는 것으로 생각했다. 예수님을 찾아온 부자청년 역시 같은 생각으로 같은 질문을 했다 (마19, 막10, 눅18).

 

거듭남에 대한 바울의 설명;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나니 그런즉 이제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2:20)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요3:6); 구원은 오직 하나님의 영역이다. 인간의 노력으로 구원을 이룰 수 없다. 영생은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것 (요17:3)

 

내가 땅의 일을 말하여도 너희가 믿지 아니하거든, 하물며 하늘의 일을 말하면 어떻게 믿겠느냐? (요 3:12)

- 우리들은 과학과 이성의 눈으로 성경과 복음을 바라본다. 인간의 제한된 논리적 판단과 이성적 사고로 절대적 존재인 하나님을 평가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과학적으로 이해시켜 주는 책이 아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을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전달 해 주는 편지이다. 사랑을 담은 편지가 이성적이고 과학적일 필요는 없다. 성경은 온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진심이 담겨있고, 우리는 그것을 복음 또는 진리라고 부른다.  

 

영지주의자들은 현재의 육적인 삶을 부정하며 (현실 도피적 삶) 그들만의 비밀스런 삶의 방법을 만들어 공동체를 만들며 살아갔다 (엣세네파). 예수님이 주시는 구원은 현재 나의 삶속에서  진행되고 있으며 종말 역시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닌 바로 지금 매 순간임을 알아야 한다. 영지주의 자들이 부정하는 그 세상을 하나님은 너무나 사랑하셔서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셨다. 바로 위로부터의 구원이다 (요 3:16).

2023년 4월 18일 화요일

온 인류의 구원자 되시는 예수님 (John 6:1-15)

   유대인들에게 하루는 날이 저물면서 시작된다. 즉 그들의 하루는 저녁부터 다음 날 저녁까지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광야까지 나아 온 무리들에게 또 다른 하루가 시작되는 시점 (날이 저무는 때)에 예수님은 육의 양식을 공급해 주셨다. 예수님은 세례요한이 죽은 후 진리의 말씀에 갈급한 사람들에게 하나님나라의 비밀을 알려 주셨고, 허기진 무리들을 육의 양식으로 풍족하게 먹여 주셨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치유의 기적을 보고 광야까지 따라 온 무리들은 영과 육의 양식을 모두 채워 주신 예수님을 세례 요한같이 세상에 보내진 선지자로 여기고, 왕으로 삼으려 했다. 광야에 모인 2만명 정도의 인원이 왕으로 세운다고 해서 곧바로 유대의 왕이 될 수 없다. 변화산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눈으로 목격한 세 제자들이 그곳에 집을 짓고 머물기를 원했듯, 사람들은 자신의 눈으로 직접 보았던 예수님의 능력에 흥분했다. 그들은 예수님이 자신들 옆에 계속 머물러 계시기를 원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온 인류를 위해 이 땅에 오셨다. 어느 한 무리만을 위해 한 장소에 머물 수는 없었다. 

 

     예수님은 온 인류의 구원자이시다.

 

     영지주의적 사고는 우리들의 세계관을 '나'와 '우리' 중심으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무리들은 그들이 본것을  이웃과 이방나라에 전파해야 했지만, 안타깝게도 오병이어의 기적을 체험한 무리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by force) 잡아 왕으로 삼고 그들만의 왕국을 만들고자 했다. 결국 예수님은 그들을 떠나 홀로 산으로 물러가셨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우리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들은 하나님을 우리들만의 것으로 소유하고자 한다. 내가 받고자 하는 것을 하나님으로 부터 얻어내는 것이 신앙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예수님을 통한 온 인류의 구원, 이웃 사랑은 나의 우선 순위에서 항상 제외시켜 버린다. 결과적으로 우리들은 예수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가지 못하고 있다. 기독교가 이 세상에서 아무런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다.

2023년 4월 11일 화요일

하나님의 영광이신 예수님 (John 5:19-47)

    세상은 절대적 존재이신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들을 수 없고, 눈으로 그 분의 모습을 볼 수 없지만,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신 하나님은 예수님을 통해 하나님의 진리를 우리 인간들에게 온전히 알게 해 주셨다. 구원자이신 예수님은 생명 그 자체이시며, 선과 악을 심판하시는 권한을 가지셨다. 예수님의 말을 듣고 하나님을 믿는 자들은 영생을 얻고, 심판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겨 진다 (요 5:24).  

    성경이 기록되기 시작한 이후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영원한 생명을 찾기 위해 묵상과 기도로 영성훈련을 통해 성경 안에 감추인 엄청난 보화들을 발견해 왔다. 사람들은 성경 말씀을 읽고 공부하고 암기하며 필사까지 하면서 그 말씀이 품고 있는 귀중한 하나님의 진리에 가까이 가고자 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했고,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한 위치에 놓으셨음을 트집잡아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였다.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 말씀을 암기하며 율법을 지키며 살아왔지만, 그 말씀이 증언하고 있는 것의 본질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예수님이 하고 계신 모든 일들이 바로 하나님의 보내심의 증거임을 알지 못했고, 성경의 모든 증언들이 바로 예수님을 가리키고 있음을 이해하지 못했다.  

 

     성경의 모든 증언들은 예수님을 증거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정작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님을 믿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찾으면서 정작 생명 자체이신 예수님께 생명을 구하지 않았다. 유대인들은 서로 영광을 주고받으면서도,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 (예수 그리스도)은 구하지 않았다. 결과적으로 유대인들은 그들이 절대적으로 존경하고 숭배하는 모세의 글 (성경)을 믿지 않게되는 모순적인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대인들의 이 모순된 신앙은 결국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구원자되심을 우리에게 보여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이기에 사람들에게 영광받으실 필요가 없다. 죽음에 처한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이 바로 지금 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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