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야에서 모세가 기도했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주셨다. 매일 충분한 양이 공급되었지만, 저장은 할 수 없었다. 즉, 일용한 양식만이 주어졌다. 여러 세대가 지난 후 또 다른 광야에서 예수님은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손에 들고 기도하시고 축복하신 후 말씀을 듣기위해 모인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셨다. 제자들은 열두 광주리의 남은 것들을 넉넉하게 모을 수 있었다. 율법으로 상징되는 모세를 통해서는 일용한 양식만이 공급되었으나, 예수님의 기도로 주어진 풍성하고 영원한 양식은 우리에게 허락될 영생을 상징했다.
율법은 결코 완전한 구원에 이르게 할 수 없으며, 반복되는 피의 제사를 필요로 한다. 예수님은 율법을 완전케 하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지성소의 휘장은 찢어졌다 (눅 23:45). 이 모든 사건들은 예수님이 진정한 그리스도이심을 알게 해준다. 유대인들이 믿음의 조상으로 받드는 아브라함보다도, 유대교의 창시자요 위대한 지도자였던 모세보다도 훨씬 더 크고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사람들의 눈 앞에 육신의 모습으로 나타나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은 예수님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고, 예수님의 권위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따지듯히 물었다 (눅 20:2). 하나님은 스스로 있는 자이시다 (출 3:14). 예수님도 진리의 말씀 자체이시며 스스로 존재하신다. 우리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질문이 아니라 경외심과 떨림을 갖고 그 은혜를 헤아리는 것이다.
"경외심과 떨림을 갖고 그 은혜를 헤아리는 것"
나를 철저히 죽이고 죄인임을 인식할 때에만 그 영생의 풍성한 은혜를 알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육신의 배고픔만을 채워주는 자신들이 원하는 신의 모습을 기대한다. 그들은 예수님의 안부를 물으며 거짓으로 사랑하는 척 예수님께 입을 맞추는 가룟 유다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마 26:49).
They all ate their fill. They gathered twelve baskets of leftovers. About five thousand were f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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