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6일 일요일

어린아이 (Mark 9)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그리고 요한을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셨고, 그곳에서 제자들은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님과 대화하는 모습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위에 임함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었다. 이 일이 있는 후 제자들 사이에서 누가 가장 큰 사람인지를 두고 말싸움이 벌어졌다.

  

스스로 의롭다 여기는 자들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판단한다.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함께 믿음의 성장을 위해 노력해야 하지만, 타인들의 부족함을 이용해 자신들의 우월함을 과시하고자 한다. 교회의 지도자들은 이러한 유치한 경쟁을 교회성장을 위해 의도적으로 이용한다. 무리지어 당을 만들고 그룹을 지어 편을 가르기도 한다. 

 

예수님은 어린아이를 품는 것이 하나님을 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린아이들은 세상의 물질적 가치에 관심이 없다. 아이들은 항상 즐거우며, 솔직하게 자기의 감정을 이야기한다. 아이들은 기존의 틀에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놀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아이들은 서로 모르는 사이임에도 금새 친구가 되며, 함께 나누며 논다. 아이들은 결코 유치한 경쟁을 하지 않는다. 무신론적 실존주의자였던 프리드리히 니체는 어린아이의 삶을 초인 (super-man)에 이르는 마지막 단계로 설명한다. 그는 어린아이의 특징을 새로운 시작, 놀이로서의 삶, 창조성, 미래를 향한 거룩한 긍정, 자연의 질서 긍정 등으로 표현했다

 

한정된 자원을 놓고 경쟁하는 세상의 문화에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은 어린아이들의 삶에서 하나님나라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은 처음과 나중이시며 생명수 샘물을 목 마른 자에게 값 없이 주신다 (계 21:6). 그의 은혜는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며 (4:14), 예수님은 그 풍성한 은혜의 바다로 바로 지금 우리를 초대하신다.

 

Whoever embraces one of these children as I do embraces me, and far more than me - God who sent me.


댓글 없음:

댓글 쓰기

최근 글

세 가지 소망

    새 계명을 제자들에게 주신 예수님은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다 . 십계명으로 대표되는 옛 계명들은 그 원래의 의미는 없어지고 그 믿음의 크기로 서로 비교와 정죄함 때문에 예수님으로 부터 꾸짖음의 대상이 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