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8일 화요일

영혼의 눈 (Mark 10-2)

 


예수님은 나면서 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해 주셨다. 그것은 기적이었다. 또한 그가 눈을 뜬 즉시 예수님을 알아보고,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며 정상인처럼 행동했다는 사실은 기적을 넘어서는 일이었다. 현대의학은 수술을 통해 소경도 정상적인 시력을 갖게 해줄 정도로 발전했다. 그러나 그 발전된 의술이 시각을 통해 들어오는 수많은 정보의 변화를 순식간에 적응하게 할 수는 없다. 존재하지 않았던 시각이 감각기관의 하나로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많은 시각경험과 인식교육이 필요하다.  

 

예수님은 단순히 바디매오의 육체적인 눈만을 뜨게 해 준 것이 아니라 시각을 통한 인식, 영혼의 눈까지 되찾게 해 주셨다. 정상인이라 하더라도 그 사람을 둘러싼 환경에 무감각할 수 있다. 보는 눈이 있지만 제대로 보지 못하고, 듣는 귀가 있어도 제대로 듣지 못한다. 손으로 만져도 느끼지 못할 수 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삶"

 

기독교는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디트리히 본 회퍼),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받아들이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몸과 영혼의 모든 감각을 이용하여 예수님을 알아가야 한다. 단순한 현상세계의 사물들만을 인식하는 감각이 아닌, 하나님을 인식하는 감각의 훈련이 필요하다.

 

Your faith has saved and healed you. In that instant he recovered his sight and followed Jesus down the roa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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