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17일 월요일

수단과 논리 (Mark 10-1)

 


사람들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수단을 만들어내고 그 수단을 정당화하기 위해 논리를 만들어낸다. 예수님을 찾아 온 부자 청년은 영생을 얻는 것이 목적이었고, 그것을 얻기 위해서는 무조건 율법을 지켜야 한다고 배웠기에 어려서부터 모든 율법을 다 지켰다. 그는 율법준수라는 수단으로 영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논리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느 누구도 율법을 완전하게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며, 율법이 사람을 영생에 이르게 해준다는 말은 성경 어디에도 없다. 그는 그 논리의 불합리화로 인하여 고민하며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예수님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돌아갔다. 율법을 다 지켰다는 그는 정작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가장 큰 계명을 지키지 못했다

 

그 두 가지 계명은 우리 삶의 본질적인 목적과 소명이다. 우리는 그 목적과 소명을 이루기 위해  어떤 수단과 논리도 만들 필요가 없다. 오직 겸손과 순종 그리고 낮아짐만이 필요하다. 용납받을 수 없는 우리를 자녀 삼아주신 그 은혜에 감격하여 살아가는 삶에는 어떤 논리도 필요하지 않다. 다만 여전히 남아있는 우리의 욕심을 제어할 수 있는 이성적 판단이 필요하다. 이성적 판단은 성령이 인도하는 마음 속의 양심이 그 기준이 되어야 한다

 

선한 양심을 소유하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알아가야 하며, 그것이 최고의 지혜를 얻는 유일한 길이다.

 

Go sell whatever you own and give it to the poor. All your wealth will then be heavenly wealth. And come follow 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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